금융위기 큰불 껐지만 과잉유동성 ‘잔불’

  • 입력 2009년 8월 10일 02시 59분


윤증현 재정 취임 6개월… 부동산 버블 해소-재정건전성 확보 과제

“이번 위기는 초저금리에 바탕을 둔 과잉 유동성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같은 방식의 처방을 되풀이해 또 다른 위기를 잉태하고 있다. 금리를 낮추고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다. 한 번 유동성을 풀면 부동산, 채권, 주식을 오가며 버블을 형성한다. 문제는 일단 처방을 그렇게 하더라도 어느 시기에 절도 있게 움직일 수 있는가이다.”

10일로 취임 6개월을 맞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사진)이 올해 1월 19일 재정부 장관에 내정되던 날 밤 동아일보 기자를 만나 한 말이다. 그는 이미 장관 취임 전부터 경기부양책으로 풀린 돈을 다시 거둬들이는 ‘출구전략(Exit Strategy)’을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고민은 이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의 두려움이 증폭되던 시기에 한국경제의 ‘소방수’로 나서 경제시스템 붕괴라는 급한 불을 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앞으로는 훨씬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한 것이다.

특히 과잉 유동성 문제는 그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난제(難題) 중의 난제다. 금리를 내리고 재정지출을 확대한 덕분에 한국경제의 조기 회복이 점쳐지고 있지만 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기업의 투자 등 생산적인 부문으로 흘러가기보다는 부동산시장이나 증시 등 자산시장으로 쏠리면서 버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전국 주택가격은 올해 4월부터 상승세로 전환돼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는 과열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재정건전성 확보라는 숙제도 떠맡았다. 재정지출을 늘리면서 지난해 4분기 ―5.1%까지 추락했던 경제성장률이 올해 1분기에 0.1%(전기 대비)로 마이너스 탈출에 성공한 데 이어 2분기에는 2.3%까지 높아졌지만 국가채무는 지난해 308조3000억 원에서 올해 366조 원, 내년에는 400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윤 장관은 요즘 사석에서 “지금까진 재정을 늘려 조기에 집행하는 일에만 집중하면 됐는데 앞으로는 재정건전성까지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고민스럽다”고 토로한다.

윤 장관의 고충은 7일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금융위기의 극복과 지속적 성장’을 주제로 열린 국제회의에 참석해 한 말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우리가 확실한 경기회복을 이룰 때까지 적극적인 재정 및 통화정책이 필요하다고 믿는다”고 밝히면서도 “경기회복 정도에 맞춰 출구전략을 단계별로 접근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재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현재 편성 중인 2010년 예산안에 장관의 문제의식이 집약될 것”이라며 “내년 세수(稅收)가 부족한 상황에서 재정지출 요구는 늘고 있고 재정건전성까지 안정적인 수준으로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세 가지 문제를 어떻게 조화시킬지가 관건”이라고 전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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