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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1월 7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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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값 떨어질라” 빈 건물 高임대료 기현상
■ 불황 덮친 위기의 현장 가보니…
대로변 안쪽 사정은 더 심각하다. 1층 상가 쇼윈도에 굵은 글씨로 ‘폐업’이라 써 붙인 곳이 적지 않다.
강남역 인근의 한 중개업소는 “매출이 줄어든 상가들이 높은 임차료를 감당하지 못해 점포를 비우거나 규모를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상권 중 하나인 서울 강남역 일대가 침체기에 들어서면서 빈 상가나 사무실이 늘어가고 있다. 앞으로 전국에 불어 닥칠 불경기의 여파를 강남역 상권이 예고해 주고 있는 셈이다.
○ 대로변 황금매장도 앞 다퉈 철수
서울 강남역 일대는 지하철 9호선이 개통을 앞두고 있는 데다 삼성타운이 입주하는 등의 호재로 부동산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올 중반만 해도 삼성그룹뿐 아니라 삼성과 직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회사들이 사무실을 많이 찾으면서 임대료도 꽤 올랐다.
하지만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분위기는 반전. 처음에는 중소형 빌딩을 위주로 사무실과 점포에 빈 곳이 많아지기 시작하다 최근에는 대형 빌딩에까지 한파가 몰아쳤다.
대형 패스트푸드점인 K매장은 최근 매출이 떨어지면서 임차료를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았다. 국내 대기업이 운영하던 식음료 매장이 철수한 자리에는 7개월이 넘게 임차인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
빌딩투자컨설팅을 하는 ‘경익I&D’의 정두교 상무는 “강남역 대로변의 1, 2층을 차지한 대형 커피전문점들도 규모를 줄이거나 나가겠다고 보증금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며 “이를 대체할 만한 프랜차이즈점에 입점을 권하고 있지만 진척이 없다”고 전했다.
상업용 빌딩 컨설팅업체인 ‘알투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올 9월 말 현재 강남권 빌딩 사무실 중 빈 사무실 비율(공실률)은 1.6%로 6월 말에 비해 0.2%포인트 높아졌다. 불황의 골이 깊어진 10월 이후의 공실률은 이보다 훨씬 높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기업 이전 시 컨설팅을 해주는 ‘사무실찾기’의 김은진 대리는 “강남권역뿐 아니라 서울의 주요 업무 상업지구에서 4분기 들어 기업들의 입주와 이전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0%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강남역 인근의 한 병원 관계자도 “병원에서 쓰는 소모품이 평시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 정도로 수요가 없다”며 “성형외과 등 상당수 병원들이 최대 성수기인 겨울방학까지만 버텨 보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 임대료 떨어지면 빌딩 값도 하락
임차인들은 빠져나가도 건물주들이 기존 임대료를 고집하는 이상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임대료를 내리면 건물의 시세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가령 강남권 중소형 빌딩 1층에서 165m² 규모로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려면 보증금 5억 원에 월 2500만 원 정도의 임차료를 내야 한다. 이를 감당하려면 월 1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려야 한다. 이 정도의 매출을 내기 힘들어졌지만 임차료는 그대로다.
부동산종합컨설팅회사인 쿠시면&웨이크필드의 한 관계자는 “점포를 비워두는 한이 있더라도 임대료는 절대 내릴 수 없다고 고집하는 건물주들이 많다”며 “현재는 임차인과 건물주가 임대료를 놓고 팽팽하게 대립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외국계 부동산서비스업체인 ‘콜드웰뱅커코리아’ 안경훈 팀장은 “임대료를 현 수준으로 고집하는 사람들은 1000억 원 이상짜리 빌딩을 소유한 일부 부유층”이라며 “경기 상황이 더 나빠지면 임대료를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