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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0월 22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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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늘리기로 외형경쟁 치중… 위험 관리 소홀한채 고임금 챙겨
정부, 지급보증 상응대책 요구… 시중銀, 임원 임금삭감 등 비상
정부가 은행들의 외화 차입에 대해 1000억 달러의 지급 보증을 서기로 하고 원화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 유동성 공급에 적극 나서면서 은행권의 ‘도덕적 해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은행들이 외형 경쟁에 치중하며 몸집 불리기에 나서 위기에 취약한 구조가 됐는데도 “임금을 높게 받고 있다”는 따가운 질책이 잇따르자 은행권도 긴축 경영 등 비상 대책 마련에 나섰다.
○ “은행권 도덕적 해이 막아야”
21일 여야는 이날 정부가 마련한 은행의 외화 차입금에 대한 1000억 달러의 지급 보증에 합의하는 조건으로 금융권의 도덕적 해이 방지 장치를 마련하기로 했다. 지급 보증에 상응하는 은행권의 자구 노력을 요구하기로 한 것.
정부의 안전망 속에서 은행의 위험관리나 자구 노력이 약화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위기가 되풀이될 때마다 정부에 손을 벌리는 관행을 근절하겠다는 원칙을 재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권이 자금난을 빌미로 금융기관의 건전성 규제를 풀어달라거나 정부의 돈줄을 풀어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도록 미리 못 박는 효과도 있다.
미국 등에서 금융회사가 부실화되는 동안 고(高)임금을 챙긴 금융가들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금융시스템 유지를 위해 지원이 불가피하지만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는 은행권을 지원할 때 여론이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위기설’ 불씨 된 은행 몸집 불리기
정부가 지급 보증까지 해준 데에는 국내 은행권에 대해 해외에서 제기된 우려가 한몫했다.
2004년 이후 저금리 시대가 지속되고 부동산 시장이 팽창하면서 국내 은행들의 대출 수요는 급증했다. 이 기간에 은행들은 수신보다 대출을 더 늘렸다. 부족한 돈은 은행채와 양도성예금증서(CD) 발행으로 보충했다.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은 2003년 12월 말 153조 원에서 올해 9월 말 현재 235조 원으로 늘었다. 2006년 부동산 대출 규제가 강화된 이후에는 중소기업 대출이 2006년 말 290조 원에서 올해 9월 말 현재 399조 원으로 109조 원 급증했다.
이러던 중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터졌고 해외의 외화자금시장과 국내 은행채 등 채권시장의 돈줄이 꽉 막혔다. 무리하게 몸집을 불린 은행들이 금융기관 건전성 규제(원화 유동성비율 100%, 외화 유동성비율 85% 이상)를 맞추려다 보니 돈이 없어 쩔쩔매는 상황이 벌어졌다. 예대율(예금 대비 대출 비율)은 단기간에 급등했고 은행채와 CD 금리도 급등했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후폭풍을 우려하던 일부 해외 언론과 신용평가회사들이 국내 은행들의 ‘유동성 리스크(위험)’를 문제 삼을 빌미가 생긴 것이다.
○ 당황한 은행 자구책 마련 나서
은행권은 무리하게 대출을 늘리며 리스크 관리에 소홀한 점은 반성해야 하지만 세계적인 금융위기 속에서 세계 각국 정부가 은행 지급 보증을 서는 마당에 국내 은행만 ‘도덕적 해이’로 몰아가는 데 대해 ‘몹시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당장은 따가운 눈총을 의식해 임원 임금 삭감 및 동결, 외화자산 매각 등 자구계획 실천에 서둘러 착수했다.
하나금융지주는 21일 김승유 회장과 김정태 하나은행장을 비롯한 전 임원진의 급여 10%를 반납하고 중소기업 지원 자금으로 최대 6200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올해 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중소기업 운전자금 대출 9조3000억 원을 전액 만기 연장해 주기로 했다.
기업은행도 윤용로 행장 등 임원 연봉 15% 이상 삭감을 비롯해 각종 경비도 10% 이상 절감 방침을 세웠고 신한은행도 임원 임금 삭감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앞서 국민은행은 20일 내년도 경영계획에서 임원 임금을 5% 삭감하기로 했고 우리은행은 “최근 2440만 달러 규모의 자산을 팔았으며 자산 매각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18개 은행의 은행장은 22일 오전 회의를 열고 불안한 금융시장을 극복하기 위해 은행권이 노력하겠다는 결의문을 채택할 예정이다.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 시중銀 자금사정 괜찮나
부채보다 자산이 더 많아
건전성에는 큰 위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