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시장 ‘규제’보다 ‘자율’이 셌다

  • 입력 2008년 4월 3일 03시 00분


휴대전화 보조금 금지법 폐지했더니 시장은 되레 안정

“어제 오시지 그랬어요. 오늘부터 (휴대전화) 보조금이 없어졌어요.”

휴대전화 보조금 지급을 금지한 법령이 폐지되고 자율화된 첫날인 지난달 27일 이동통신 판매점 밀집지역인 서울 용산구 용산전자상가에서는 보조금이 오히려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 혼탁을 막겠다면서 도입한 보조금 금지법이 없어지자 오히려 시장이 안정된 셈이다.

○ 규제와 반대로 가는 시장

동아일보가 보조금을 금지할 때와 자율화 이후 SK텔레콤, KTF, LG텔레콤 등 이동통신업체의 보조금 지급 수준을 각각 비교한 결과 자율화 이후 보조금이 평균 10만 원가량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SK텔레콤과 KTF는 지난달 26일 이전 용산전자상가, 광진구 구의동 테크노마트 등 휴대전화 상가에서 각각 37만∼45만 원, 35만∼42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일부 모델은 최대 75만 원의 보조금이 지급됐다.

하지만 보조금이 자율화되고, 약정할인제가 시행되면서 보조금 수준은 2일 현재 SK텔레콤이 21만∼27만 원(1년 약정), KTF가 30만∼35만 원(2년 약정)으로 떨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보조금 금지 규제는 옛 정보통신부가 2000년 도입한 뒤 연간 1040억 원(2006년)의 과징금을 물리면서까지 강도 높게 운영했지만 보조금을 근절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하지만 막상 금지 법령을 없애자 보조금이 급증하기는커녕 소폭 줄어드는 반대의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새 정부가 폐지를 결정한 통신요금 인가제도 규제의 목적과 시장의 반응이 정반대로 나타난 사례로 꼽힌다.

인가제는 1위 업체인 SK텔레콤의 서비스 원가(原價)가 2, 3위인 KTF, LG텔레콤보다 낮다는 점을 이용해 독점을 강화하지 못하게 한 규제다. SK텔레콤이 마음대로 요금을 낮추지 못하게 묶어 둔 뒤 KTF, LG텔레콤이 요금을 낮춰 가입자를 빼앗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KTF, LG텔레콤이 요금 경쟁에 나서는 대신 1위 기업의 요금 수준을 뒤따르며 이익을 극대화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염용섭 박사는 “자율화 이후에도 보조금 시장이 혼탁해질 가능성은 적다”며 “정부 규제가 시장의 방향을 바꿀 수 없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에 대해 최선규 명지대 디지털미디어학과 교수는 “현재 보조금이 축소된 것은 자율화 초기에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고, 한 사업자가 과열 경쟁을 시작하면 다시 보조금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 소비자 보호 규제까지 없애서는 안 돼

통신 전문가들은 시장 경쟁에 관련된 규제는 푸는 것이 좋지만, 소비자 보호와 안전을 위한 규제는 철저히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보조금 자율화 이후 통신업체들이 의무약정제를 도입하고 있는데, 판매 현장에서 위약금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아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이에 대한 보완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규제의 목적과는 반대로 가는 통신시장
규제 및 정책규제 목적실제 현상
보조금 지급 금지잦은 휴대전화 교체로 인한 낭비 방지―보조금 근절 실패―자율화 후 오히려 보조금 축소
통신요금 인가제1위 기업의 ‘약탈적’ 요금 인하를 막아 후발 통신업체의 요금 경쟁 유도―통신업체들의 요금 수준 비슷해져 요금 경쟁 실종
010 번호통합‘011’ 등 1위 기업의 번호 브랜드화 막아 공정 경쟁 유도―3위 기업인 LG텔레콤이 ‘019’ 사용 원해
통신 재판매(일종의 소매)제도 도입중소, 해외 통신업체의 시장 진입 유도해경쟁 활성화―기존 1위 기업의 다른 통신영역 진출로 지배력 강화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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