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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개월간 국내 투자자들이 해외펀드 투자로 손해 본 금액은 18조 원가량으로 한국이 2007년 한 해 동안 수출로 벌어들인 돈을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1일 펀드평가사인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세계 증시가 고점을 지난 직후인 작년 11월 1일부터 올해 3월 27일까지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손실 규모를 추정한 결과, 해외 주식형펀드에서 17조7775억 원의 평가 손실이 났다. 지난해 한국의 무역수지 흑자 규모인 146억 달러(약 14조4000억 원)를 훌쩍 넘는 금액이다.》
덩달아 투자한 사람이 주로 손해
특히 전체 해외펀드에서 31.5%의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펀드는 10조9409억 원의 평가 손실을 냈다. 이는 해외펀드 전체 손실 규모의 61.5%에 이른다. 같은 기간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5,954.77에서 3,411.49로 2,543.28포인트(42.7%)나 하락했다.
펀드 평가 시점을 앞당겨 지난해 초부터 올해 3월 27일로 잡으면 해외펀드 평가수익은 22조6654억 원이다. 중국펀드도 12조5424억 원의 평가수익을 냈다. 중국펀드 수익률은 2007년 11월 1일부터 2008년 3월 27일까지 ―38.12%지만 최근 1년 수익률은 17.94%다.
1년 이상 투자한 사람의 수익률은 여전히 플러스지만, 중국 증시가 고점을 치자 따라 들어간 투자자는 손실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2월 말 현재 해외 주식형 펀드 계좌 수는 782만 개. 이 가운데 10월부터 5개월간 늘어난 계좌가 316만 개나 된다. 따라서 상당수의 투자자들이 증시 고점 때 해외 주식형 펀드로 몰렸고 이후 세계 증시 폭락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10월 매월 30만 원을 적립식으로 붓는 중국펀드에 가입한 주부 임모(33·서울 성북구 돈암동) 씨는 “올해 9월 아들 돌잔치를 준비하기 위해 중국펀드에 들었는데 최근 수익률이 ―20%를 넘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중국-인도‘몰빵투자’가 문제
해외펀드 손실이 급격히 불어나자 투자자들에게 중국과 인도펀드에 이른바 ‘몰빵 투자’를 하라고 부추긴 금융기관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분산투자를 하지 않은 투자자들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해 환율 방어를 위해 해외 투자 활성화 대책을 내놓은 정부에 대한 원망도 없지 않다.
정부는 지난해 1월 15일 해외펀드 3년 비과세 조치와 개인의 투자 목적 해외 부동산 취득한도 확대(100만 달러→300만 달러)를 골자로 하는 ‘해외투자 확대 방안’을 내놨다. 경상수지 흑자로 달러가 넘쳐나면서 원-달러 환율 하락(원화 가치는 상승)이 지속되자 이를 안정시키려는 것이었다. 양도차익에 부과되는 15.4%의 세금을 감면하는 비과세 조치가 지난해 6월 1일 시행된 뒤 5월 말 19조2073억 원이던 해외 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6개월 만에 49조8856억 원으로 폭증했다.
급격한 자금 쏠림으로 은행들은 돈이 말랐다. 2006년 은행 저축성 예금 증가액은 23조4438억 원이었으나 2007년에는 고작 1조7758억 원만 늘었다. 대출 재원이 부족하니 은행은 은행채와 양도성예금증서(CD)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해 시중 금리가 급등하는 혼란이 왔다. 서민들은 ‘금리 폭탄’으로 고통을 겪기도 했다.
정부가 의도했던 환율방어 효과도 미약했다. 삼성선물 전승지 연구원은 “해외펀드의 80%는 외환을 선물(先物)로 파는 형태로 환헤지를 했기 때문에 환율 안정 효과가 기대에 못 미쳤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했던 해외투자 자율화 방안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무리라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연세대 최흥식 경영학부 교수는 “지금 같은 상황이라 해도 똑같은 정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선진국이 자본을 갖고 개발도상국에 들어가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것처럼 금융업 시장이 좁은 한국도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해외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수업료 낸 만큼 투자 문화 성숙해져야
한국금융연구원 신용상 연구위원은 “정부의 해외투자 활성화 방안의 방향은 맞지만 ‘몰빵 현상’을 방지하는 리스크 관리가 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수익성만 중시해 신흥시장에 치우친 투자자와 마구잡이로 해외펀드를 만든 자산운용사도 문제다. 지난해 국내 51개 자산운용사가 출시한 해외 주식형 펀드는 218개로 국내 주식형 펀드(102개)보다 2배나 많았다.
한국투신운용 강신우 부사장은 “펀드 문화가 형성된 지 3, 4년밖에 안돼 인도 중국이 좋다고 하면 다 따라가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국펀드평가 우재룡 사장은 “선진국에서는 자산운용사들이 투자자들에게 확고한 자산배분 원칙을 갖고 자금 용도에 따라 장기투자하도록 유도한다”며 “정부, 금융기관, 투자자 모두 이번 해외펀드 폭락 사태를 교훈 삼아 리스크 관리 및 분산투자에 대한 인식이 한 계단 더 높아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