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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11월 15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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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변호사 거짓말 땐 처벌” 일선검사들 격앙
鄭총장 “청문회 전날 명단 공개하다니” 비판
대통합민주신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이 14일 ‘삼성 비자금 특검’ 법안을 발의하자 검찰은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향후 특검 수사가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런 상황에서 정상명 검찰총장이 특검 도입의 계기를 제공한 김용철 변호사의 이른바 ‘떡값 검사’ 명단 공개 방식을 정면으로 비판해 ‘떡값’ 파문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차라리 잘됐다” vs “검찰이 부패집단이냐”=특검 도입에 대한 검찰 내 반응은 크게 엇갈리고 있다.
검찰의 한 고위 간부는 “특검이 도입되는 것은 매우 불쾌한 일이지만 검찰총장 내정자에 대한 의혹까지 제기된 마당에 검찰의 입지는 매우 좁다”며 “차라리 특검에서 수사하는 것이 국민이 보기에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중견 검사도 “수사 결과의 신뢰를 위해서는 특검으로 가는 게 옳다”면서도 “하지만 그동안 검찰이 수사해 온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사건은 기존 수사팀이 마무리하는 게 좋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일선 검사는 안타까운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재경 지검의 한 검사는 “근거 없는 폭로 때문에 검찰 전체가 부패집단으로 매도되는 것 아니냐”며 “김 변호사의 폭로가 거짓으로 밝혀진다면 명예훼손 등 혐의로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부장검사는 “특검이 수사해도 김 변호사나 김 변호사를 지지하는 세력이 원치 않는 결과가 나오면 그땐 특검이 로비를 받았다고 하지 않겠느냐”라고 지적했다.
특검 법안이 발의되면서 진행 중인 검찰의 수사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오광수)는 전날 고발인 측인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에 전화로 출석을 요청했으나 불응함에 따라 이날 “서면으로 출석을 요청하겠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고발인 측이 검찰에 출석할 가능성은 낮다.
▽정 총장 “누굴 위한 명단 공개냐”=23일 퇴임하는 정 총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임채진 검찰총장 내정자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하루 앞두고 김 변호사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통해 임 내정자 등 검찰 전현직 최고위 간부 3명을 ‘떡값 검사’로 지목한 데 대해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정 총장은 “차라리 차기 검찰총장이 내정돼 검증하자는 것이면 모를까, 그동안 명단을 안 내놓다가 (청문회를) 하루 앞두고 무슨 짓이냐”며 “이게 누굴 위한 것이냐”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김 변호사가 (사건을 배당하기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모 과장에게 수사를 맡기라고 요구했다”며 “(배당 이후 이귀남 대검 중수부장이 ‘떡값’ 검사 명단에 있다고 밝혔으므로) 만약 중수부에 맡겼다면 이 중수부장이나 중수과장이 그만둬야 할 것 아니냐”고도 했다.
정 총장은 “검찰도 잘못한 게 많이 있고 지금 일어나는 현상은 사필귀정이 아니겠느냐”면서도 “가장 중요한 건 실체적 진실이 뭔지 밝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차기 정부 특검 기다리다 경제살리기 발목잡힐 판”▼
삼성 “해외거래처 문의 빗발… 이미지 타격 우려”
재계 관계자 “대선 공방이 기업을 희생양 삼아”
삼성그룹은 14일 정치권의 ‘삼성 비자금 의혹 특별검사 법안’ 발의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노코멘트’로 일관하면서 반응을 자제했다.
하지만 삼성 관계자들은 “한두 군데 떨어진 폭탄을 수습하던 중 원자폭탄이 떨어진 격”이라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또 경영에 상당한 부담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했다.
재계에서도 최장 200일 동안 진행되는 ‘삼성 특검’이 차기 정부가 내놓을 새로운 기업 관련 정책 및 ‘경제 살리기’의 발목을 잡을 수 있고, 연쇄적으로 다른 기업들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며 우려하는 표정이었다.
○ “내년 경영계획 수립 큰 차질”
삼성은 내부적으로 특검 법안 발의와 관련해 “대통령선거를 앞둔 정치적 변수까지 겹치면서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며 상당히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김용철 변호사의 허위 폭로가 정치 쟁점화하는 상황을 가장 우려했는데 결국 그렇게 됐다”며 “한마디로 속수무책”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또 “법안 내용을 보면 구체적 증거도 없이 특정 기업을 이 잡듯 뒤져 보겠다는 것인데 이게 말이 되느냐”고 주장했다.
연말 결산과 내년 경영계획 수립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특검이라는 악재를 만나 전반적인 경영 차질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한 임원은 “이번 연말은 유가 급등과 환율 하락 등 산적한 글로벌 악재를 타개할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인데도 특검 법안 발의로 내년 경영계획 수립 등 주요 일정에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다”며 “특히 임원 인사 등 중요한 경영 현안 점검이 전면 중단된 상태”라고 말했다.
해외사업 비중이 높은 계열사에서는 사실 관계를 떠나 기업 이미지 추락으로 해외영업에 미칠 악영향을 걱정하고 있다.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번 사건이 연일 외신에 보도되면서 해외 거래처의 관심과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며 “해외법인 직원들이 사실 관계를 해명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고 전했다.
○ “차기 정부 기업정책 삐걱”
재계에서도 특검 법안이 발동되면 차기 정부의 경제정책이 출발부터 혼선을 빚을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특검 구성 절차상 빨라야 연말에나 수사가 가능한 데다 특검 기간도 최장 200일”이라며 “내년 상반기(1∼6월)는 새 정부가 경제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기업관련 정책을 내놓아야 할 시기지만, 오히려 특검 결과부터 지켜봐야 하는 갑갑한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검 여파가 삼성뿐 아니라 다른 기업에 확산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고위 관계자는 “특검 소식 자체는 진실과 관계없이 ‘삼성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부정적 이미지를 전달하게 된다”며 “이는 다른 기업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막연한 인식을 퍼뜨려 반(反)기업 정서를 확산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이번 대선에서도 어김없이 기업을 정치적 목표 달성을 위한 희생양으로 만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 과거 6차례 특검 성과는
‘이용호’-‘대북송금’ 땐 새 비리 밝혀
‘대통령 측근’-‘유전의혹’은 유야무야
1999년 ‘옷 로비 사건’과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으로 특별검사제가 처음 도입된 뒤 모두 6차례에 걸쳐 특검이 임명됐다.
일부 특검은 검찰이 밝혀내지 못한 비리를 파헤쳐 국민의 지지를 받았지만, 일부 특검은 성과 없이 사라지기도 했다.
가장 큰 성과를 낸 특검으로는 ‘이용호 특검’과 ‘대북송금 특검’이 꼽힌다.
2001년 차정일 특검이 이끈 이용호 특검팀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처조카인 이형택 전 예금보험공사 전무, 이수동 전 아태재단 상임이사 등 거물급 인사들과 신승남 당시 검찰총장의 동생 승환 씨 등을 줄줄이 구속했다. 특검 수사를 넘겨받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결국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 씨까지 구속했다.
2003년 송두환 특검을 중심으로 한 대북송금 특검팀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의 대가로 5억 달러를 북한에 송금했다는 결론을 내려 엄청난 파장을 낳았다. 또 특검팀은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구속하고, 현대가 박 전 실장에게 150억 원을 제공했다는 정황을 포착해 검찰에 이첩함으로써 현대 비자금 사건 수사로 이어졌다.
반면 2003년 ‘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과 2005년 ‘유전의혹 특검’의 경우 정략적으로 도입돼 별다른 성과 없이 조용히 수사를 마치는 바람에 ‘특검 무용(無用)론’이 나오기도 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역대 특검 특검 시기 주요 수사 대상 옷로비 특검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 연정희 씨에게 재벌총수 부인 등이 옷으로 로비를 펼쳤다는 의혹 조폐공사 파업유도 특검 1999년 조폐공사의 파업 과정에 정부가 개입했다는 의혹 이용호 특검 2001년 이용호 전 G&G그룹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 대북송금 특검 2003년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북한에 비밀 송금을 했다는 의혹 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 2003년 최도술 전 대통령총무비서관 등의 금품수수 의혹 유전의혹 특검 2005년 철도공사의 유전개발 사업 추진 과정에 정치적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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