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6년 10월 30일 03시 00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강원 정선군 농업기술센터 최대성(51) 소장이 “오가피 열매로 술 만드는 공장을 짓겠다”고 했을 때 최 소장과 일하는 담당 과장과 계장은 “결재를 할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러면 나 혼자만 사인하고 책임도 혼자 지겠다”고 최 소장이 고집을 피우자 그들은 마지못해 결재란에 서명했다.
최소장이 오가피 열매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었다.》
정선은 비탈길이 많고 흙에 석회암이 많이 섞여 있어, 벼농사는 꿈도 못 꾸고, 기계를 이용한 대규모 농사도 힘든 지역이었다.
고랭지 채소에 의존해 채소 값에 따라 매년 군 전체가 울고 웃는 일을 더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꾸준한 돈벌이가 될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최 소장이 1990년대 초 계장 시절부터 연구해 온 게 오가피 열매로 담그는 술이었다.
오가피나무는 퇴비만 주면 될 정도로 재배가 쉬웠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오가피 열매는 풍을 쫓아준다고 해서 ‘추풍사(秋風使)’로 소개돼 있다.
센터 주위의 300여 평 밭에서 10년 가까이 수십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오가피 열매를 말렸다 우려내는 방법으로 2003년 초 술 담그는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 “편견 깨고 기업 도움 받아라”
마지막으로 국순당 배상면 회장을 찾아가 “오가피 열매주를 생산해 달라”고 사정했다.
배 회장을 만난 자리에 배석했던 국순당연구소 김계원(49) 소장이 뒤늦게 전화를 걸어왔다. 백세주 판매 부진으로 새로운 제품 개발에 사운(社運)을 걸고 있던 김 소장은 △오가피 열매는 정선의 기후와 토양에서만 재배되고 △정선과 재료 공급 독점 계약이 가능하며 △술 맛과 향이 좋고 △오가피 열매의 효능이 뛰어나다는 점을 들어 “당장 일을 진행하자”며 의기투합했다.
식품등록과 주류면허는 이미 최 소장이 다해 놓은 뒤였다. 그 뒤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정선군은 2004년 12월 정부 예산 9억1000만 원을 들여 농업기술센터 옆 터에 오가피 열매주 제조공장을 세웠다. 국순당은 2005년 10월 오가피 열매 재배 농민들과 국순당 75%, 농민 25%의 지분으로 자본금 480억 원짜리 오가피 열매주 생산법인 ‘국순당 정선명주 주식회사’를 세웠다. 술 브랜드는 ‘오가명작’으로 상표등록을 했다.
○ 농민, 기업, 지자체 함께 사는 길
올해 8월 1일 오가명작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정선군 농업기술연구센터가 개발한 기술로, 농민이 재배한 재료를 이용해 정부가 제공한 공장시설에서 제조한 뒤, 민간업체가 판매 마케팅을 하는 술 오가명작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동안 15만 병을 제조했으며 생산된 오가명작은 출고되는 즉시 팔려 나가 품귀현상까지 빚고 있다.
김 소장은 “이제 시작단계지만 이미 품귀현상을 빚고 있는 것은 좋은 신호”라며 “재배량만 늘면 백세주 못지않은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재배농민 유선균(46) 씨는 “아직 재배량이 기대에 못 미치는데도 평당 수익성이 벼농사의 3배에 달하고 있다”며 “억대 수익을 올릴 기대에 부풀어 있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관이 모든 걸 할 수 없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며 “민-관-산(民官産)이 합쳐 큰일을 할 수 있다는 좋은 선례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선=나성엽 기자 cpu@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