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노조 파업 돌입…직권중재 무시 ‘불법’ 강행

  • 입력 2006년 9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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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1시30분부터 전면 파업에 들어간 발전노조 조합원들이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에서 ‘발전파업 승리 공공연맹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강병기 기자
4일 오전 1시30분부터 전면 파업에 들어간 발전노조 조합원들이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에서 ‘발전파업 승리 공공연맹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강병기 기자
국내 5개 발전(發電)회사 통합노조인 한국발전산업노조가 4일 오전 1시 반부터 파업에 들어감에 따라 ‘발전 대란(大亂)’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앞서 중앙노동위원회가 3일 오후 직권중재 회부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정부는 이번 발전노조 파업을 ‘불법 파업’으로 규정했다. 이에 따라 공권력 투입 등 정부와 노조 간에 극한 대치 가능성도 예상된다.

발전노조의 파업은 2002년 2월 말부터 4월 초까지 37일간의 파업에 이어 4년 6개월여 만이다.

특히 2002년과 달리 이번에는 늦더위가 남아 있는 9월 초여서 그 파장은 더 심각할 가능성이 높다. 파업으로 전력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면 일반생활의 불편은 물론 가뜩이나 하강국면에 들어선 경기에도 악영향이 예상된다.

산업자원부 관계자는 “2002년 발전노조 파업은 전력수요가 많지 않은 2∼4월에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드러난 문제는 크지 않았지만 장기 파업으로 대체투입 인력의 피로도가 극에 달해 아슬아슬한 상황까지 갔다”면서 “계절적으로 볼 때 이번에는 더 큰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파업 돌입 선언’과 ‘직권중재 회부’

발전노조는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3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발전파업 승리 공공연맹 결의대회’를 열고 △해고자 복직 △5조 3교대 근무 △조합원 범위 확대 등 3개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4일부터 파업에 들어간다고 선언했다.

집회가 끝난 뒤 고려대로 장소를 옮겨 중앙광장에서 파업 전야 집회를 벌이던 노조 집행부는 밤 11시 10분경 중노위의 직권중재 회부결정이 알려지자 내부 회의를 거쳐 4일 오전 1시 30분을 기해 파업 돌입 결정을 내렸다.

중노위는 파업 금지기간 동안 중재안을 마련하고, 노사는 이 중재안을 반드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노사는 직권중재 회부 결정 이후에도 계속 협상을 진행할 수 있으며 협상이 타결되면 직권중재 절차는 중단된다.

이에 앞서 산자부는 3일 정부과천청사에서 5개 발전회사 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비상대책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이원걸 산자부 차관은 노조의 요구에 대해서는 “교섭대상이 아니거나 수용이 불가능한 부분이라 양보할 수 없다”고 밝혔다.

○ 파업이 장기화되면?

산자부와 발전회사는 비상대책을 실시하기로 했다.

우선 발전운영 경험이 있는 간부사원 2836명을 운전인력으로 배치하고 파업이 길어지면 발전상비군 400명, 발전회사 퇴직자 238명, 협력업체 직원 68명을 투입하는 등 대체인력 3500여 명을 활용하기로 했다.

또 4조 3교대 근무를 3조 3교대로 바꾸고 노조의 점거농성에 대비해 한전 본사, 발전소 중앙제어실 등 주요 시설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는 등 비상운전대책을 시행하기로 했다.

당장은 전력수급에 차질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력 예비율이 20%에 이르는 데다 발전설비가 대부분 자동화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5개 발전회사 전체 직원 9300여 명의 70%에 이르는 6500여 명의 조합원이 소속된 발전노조의 파업이 장기화되면 상황은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 쟁점은 무엇인가

산자부와 발전회사들은 노조의 요구사항이 노사교섭 대상이 아니거나 수용할 수 없는 것들이라고 반박하고 있어 앞으로 협상에 난항이 예상된다.

발전노조는 현재 2002년 파업 때 해고자 중 아직 해고상태인 한 명을 포함해 해고자 4명 가운데 2명을 올해 안에 복직시켜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산자부와 발전회사들은 4명 중 3명에 대해서는 해고가 정당하다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났으며 1명에 대한 재판은 진행 중이어서 법원의 판단에 따를 뿐이라고 맞서고 있다.

다른 요구 조건 중 하나인 5조 3교대 근무에 대해서도 사측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5조 3교대를 시행하면 주당 근무시간이 34시간으로 줄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상의 주 40시간 근무원칙에 어긋나며 다른 직종에 근무하는 노조원과의 형평성에도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합원의 범위를 과장급까지 확대하라는 노조의 요구에 대해서도 사측은 “파업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라며 부정적 반응이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 2002년엔 어땠나

5개 발전회사가 한국전력에서 분리된 것은 2001년 4월이었다.

발전노조는 분리 다음 해인 2002년 2월 말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방침에 반대하며 파업을 시작했다. 이 파업은 37일간 계속됐지만 같은 해 4월 초 노조 측이 사실상 백기(白旗)를 들면서 끝났다.

당시 정부는 노동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어정쩡한 타협’을 거부하고 법과 원칙에 입각해 대처함으로써 파업 대응과 관련한 새로운 원칙과 기준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었던 전윤철 현 감사원장이 정부의 강경 대응을 주도했다.

파업에 적극 참여했던 발전노조원 348명이 해고됐다. 발전노조를 대신해 정부와 협상을 벌였던 민주노총은 장기 파업으로 여론이 악화되자 노동계 일각에서 ‘항복 문서’라고까지 비판한 합의문에 서명하고 파업을 공식 철회했다. 이 때문에 파업 철회 직후 민주노총은 지도부 사퇴 등 심한 후유증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이 파업 때 해고된 노조원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 복직해 정부의 원칙적 대응 취지가 퇴색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02년 6월부터 2004년 12월까지 해고 근로자들은 몇 차례에 나눠 재입사해 지금까지 단 1명을 제외한 347명이 회사로 복귀했다.

그러나 발전회사의 한 관계자는 “파업을 벌인 노조원에게 파업 기간 임금은 주지 않았기 때문에 ‘무노동 무임금’ 원칙은 지켰다”고 말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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