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팔린 뒤 그는 돈을 빌린 6군데에 2000만∼4000만 원씩을 나눠 송금했다.
김 씨의 금융거래 정보는 ‘자금 세탁 혐의’로 재정경제부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에 통보됐을 가능성이 크다.
2001년 11월 자금세탁 방지를 위해 신설된 FIU에 금융회사로부터 접수되는 자금 세탁 혐의 거래 정보가 급증하고 있다. 2002년 275건에 불과하던 혐의 거래 정보가 지난해에는 1만3459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2월 말까지 누적보고 건수는 2만4117건. 2002년에 비해 거의 100배 가까이로 불었다.
○방대한 금융거래 정보 집중
경기 과천시 재정경제부 청사 8층에 자리 잡은 FIU는 요즘 어느 때보다 분주하다.
론스타 및 현대·기아자동차그룹 사건이 터지면서 검찰과 감사원 등으로부터 정보 요청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FIU가 보유한 금융거래 정보가 방대하다는 증거다.
은행 증권 보험사 등 금융회사는 2000만 원 이상 현금 거래 중 자금 세탁으로 의심되는 거래는 FIU에 통보해야 한다.
특히 올해 1월 18일부터는 5000만 원 이상 현금 거래는 자금 세탁 혐의와 상관없이 무조건 인적사항 등을 통보하는 고액현금거래 보고(CTR)가 시작됐다. 3월 말까지 154만5000건에 49조2530억 원의 거래가 FIU에 보고됐다.
국민은행 장형덕 감사는 “혐의 거래나 고액 현금 거래를 보고하지 않으면 법적 제재가 따르고 금융회사가 피해를 볼 수 있어 보고를 최대한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FIU는 이렇게 들어온 정보를 분석해 자금 세탁 혐의가 높은 거래는 검찰, 경찰, 국세청, 관세청, 금융감독위원회, 선거관리위원회 등에 통보한다.
국세청과 관세청은 이렇게 넘겨받은 정보 가운데 각각 74.5%와 80.9%에 대해 세금 추징 등 조치를 끝냈다. 검찰의 기소 등 조치율도 24.7%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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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생활 보안장치 더 마련해야
하지만 FIU에 금융거래정보가 몰리면서 사생활 침해와 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금융회사들은 전산시스템에서 △거액의 자금을 쪼개 여러 계좌에 분산 예치하는 경우 △하루에 여러 차례 고액 현금 거래를 하는 경우 △혐의 거래처에 자금 송금이 잦은 경우 등을 자동적으로 혐의 거래자로 걸러내고 있다.
이렇게 1차적으로 거른 혐의 거래자 중 인적사항 대조를 통해 최종적으로 의심이 가는 금융 거래 정보를 고르지만 엉뚱한 사람이 의심을 받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실제로 FIU가 2월 말까지 보고받은 2만4117건의 혐의 거래 정보 가운데 최종적으로 혐의 거래로 판단해 관련 기관에 통보한 건수는 3553건으로 15%에 불과하다.
자금 세탁을 연구해 온 영남대 김혜정(형법학) 교수는 “금융실명제에 규정된 고객비밀보호 조항의 예외를 인정받는 제도라서 사생활 침해 보완장치가 더 마련되어야 한다”며 “자칫 과도한 정보 수집으로 새로운 ‘빅 브러더’가 될 소지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경부 유재한 FIU 원장은 “정보를 누설하면 법적인 제재가 따르기 때문에 보안장치는 충분히 갖춰져 있다”면서도 “역시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정보의 유출이어서 직원 관리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현진 기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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