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산업을 첨단산업으로 바꾼 젊은 CEO

  • 입력 2006년 2월 16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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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공장에서 살다시피 했던 그들이었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현장을 돌아다니며 공장 아저씨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물론 당시의 공장은 지금으로 치면 ‘조금 큰 집’ 수준밖에 안 됐다. 하지만 그곳에 널려 있던 부품을 만지작거리면서 각기 마음속에 큰 꿈을 키웠다.

듀오백코리아 정관영(36) 사장과 에이스침대 안성호(39) 사장.

어느덧 30대 후반에 접어든 이들은 가구업계의 어엿한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이들에게 “가구업은 사양산업이 아니냐”고 물으면 혼쭐이 난다. 인체공학 지식으로 무장한 머리 속에서 새로운 시장과 제품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수십 년간 한 우물을 판 ‘선대(先代)’의 장인(匠人)정신이 이들에게는 첨단기술로 계승됐다. ‘의자는 앉을 때 쓰는 제품’, ‘침대는 잘 때 쓰는 제품’이라는 인식을 바꾸는 것이 이들의 최종 목표다.

○“아직도 난 현장 실무자”…듀오백 정관영 사장

“사람이 하루에 10시간 이상 쓰는 제품은 의자, 침대, 신발 세 가지뿐입니다.”

듀오백코리아는 1987년 설립된 해정산업으로 출발했다. 아버지 정해창(66) 회장은 20년 동안 의자만 만드는 외길을 걸었다.

정 사장은 호주 유학을 마친 뒤 1999년 듀오백에 입사해 2004년 사장에 올랐다. 지난해 매출액은 약 425억 원. 브랜드 의자 시장의 30%가 이 회사의 몫이다.

“지금은 흔한 10만 원짜리 나이키 신발이 옛날엔 ‘부(富)의 상징’으로 통했죠. 의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 의자나 쓰던 사람들이 점점 기능성 의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죠.”

과학적 의자를 만든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정 사장은 ‘일벌레’가 됐다.

의자와 관련된 논문이라면 모조리 뒤져 읽어보고 가구전시회를 둘러보러 수시로 해외에 나간다. 일년에 쉬는 날은 설날과 추석 딱 이틀뿐. 요즘도 하루 4, 5차례 생산 현장에 간다.

그는 “지금도 공장에 가면 제 손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의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듀오백 코리아 정관영사장

○‘최고가 아니면 하지 마라’…에이스 안성호 사장

“아버지는 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말라는 교훈과 함께 침대 1등 기업을 물려주셨죠. 그때보다 더 나은 상태에서 후대에 물려주는 것이 꿈입니다.”

그의 꿈은 조금씩 현실이 되고 있다.

안 사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은 2002년 말 회사는 무차입 경영을 선언했다. 2004년부터는 이동수면공학연구소를 가동해 첨단장비를 갖추고 고객을 찾아가 침대를 골라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침대는 과학’이라는 아버지의 철학을 더욱 발전시킨 것. 늘 잠바를 걸치고 공장을 둘러보는 모습은 창업주인 아버지 안유수(76) 회장의 모습 그대로라는 평이다.

그는 “‘2세 경영인’으로서 부담도 있지만 모든 것은 결과가 말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에이스침대는 1963년 영세 수공업으로 출발했다. 1990년대에 근로자 임금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자동화를 서둘렀다.

“아직도 가구 외에는 할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국내 시장이 포화상태에 접어들어 해외로 사업을 확장할 뿐이죠.”

그는 친동생 정호(36) 씨가 사장으로 있는 시몬스침대와 함께 국내 침대시장의 절반을 차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안 사장은 “동생과는 하루에도 몇 번씩 통화할 정도로 끈끈하다”면서도 “하지만 영업 분야는 철저히 경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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