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종가집→中加吉, 동원→東源… 이름부터 틀려

  • 입력 2005년 11월 2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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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 김치와 고추장 등에서 기생충 알이 검출됐다는 중국의 발표는 사실일까. 유해 식품에 대한 조사와 수입금지 조치는 모든 나라가 갖고 있는 권리이다. 하지만 중국에 김치를 수출한 적도 없다는 한국 해당 업체들의 주장은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이 자국 식품에 대한 한국의 잇단 유해 물질 검출 발표에 맞서 보복에 나섰다는 관측이 많다.》

○ 중국 발표는 의문투성이

1일 식품의약품안전청과 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중국에 수출된 김치는 모두 19t이다.

이 가운데 중국 질검(質檢)총국이 기생충이 나왔다고 밝힌 동원F&B, 두산, CJ, 풀무원 등은 올해 중국에 김치를 수출한 적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로 이날 중국 베이징(北京) 시내 대형 유통업체인 톈커룽(天客隆)의 식품매장 2곳에서는 지촨(吉川), 지예(吉葉) 등 중국 업체가 만든 김치만 팔릴 뿐 한국산 김치는 찾아볼 수 없었다.

동원F&B 서정동(徐廷東) 커뮤니케이션팀장은 “중국에 김치 공장을 갖고 있으나 전량 일본에 수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두산은 중국에서 김치를 팔고 있으나 현지에서 만든 것이어서 중국이 밝힌 ‘한국산 수입식품’에 해당되지 않는다.

중국 당국이 지목한 업체와 제품의 이름이 불분명해 정말 한국 기업이 만든 김치인지조차 확실치가 않다.

질검총국 홈페이지에는 동원F&B의 양반김치를 동원의 ‘사대부 김치’라고 밝히면서 동원그룹이 쓰는 ‘東遠’이 아니라 ‘東源’으로 표기했다.

두산의 ‘종가집 김치’도 현지에서 유통되는 두산 제품의 상품명(쭝자푸·宗家府)이 아니라 ‘종가집’을 소리 나는 대로 적은 ‘中加吉’로 돼 있다.

CJ 중국 법인 관계자는 “중국 업체가 CJ 브랜드를 도용한 김치를 제조 판매해 중국 당국에 고발한 적도 있다”며 이번에 문제가 된 제품이 가짜 한국산일 가능성을 내비쳤다.

또 고추장과 불고기 양념장은 중국에 수출되긴 했지만 살균처리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기생충이 남아 있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는 게 식품 전문가들의 견해다.

식약청 이창준(李昌濬) 식품안전정책팀장은 “기생충 알은 70도에서 1초, 60도에서 5초 이상 가열하면 죽는데 한국 업체는 고추장은 85∼95도에서 5분간, 불고기 양념은 85도에서 2∼5분 살균 처리한다”고 밝혔다.

○ 누적된 불만에 따른 보복인가

질검총국은 지난달 31일 발표 직전 주중 한국대사관에 “산둥(山東) 성 분국(分局)에서 한국산 수입제품을 검사했더니 10개 제품에서 기생충 알이 검출됐다”고 통보했다.

이에 대해 주중 한국대사관과 주한 중국대사관 관계자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중국은 누적된 불만을 갖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중국은 김치, 차(茶), 뱀장어 등 중국산 수입식품의 유해성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한국의 발표 및 처리 방식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왔다.

리창장(李長江) 중국 질검총국장은 지난달 26일 중국 베이징에서 가진 오거돈(吳巨敦) 해양수산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중국에 수입되는 한국산 제품에도 문제가 있지만 우리는 대외적인 발표에 힘쓰지 않는다”고 우회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질검총국이 최근 한국 내 중국산 김치 파동과 관련해 상부로부터 강한 질책을 받았다는 얘기도 현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이는 중국이 지방 분국에서 급조한 조사 자료만을 근거로 이번 조치를 취했다는 인상을 강하게 풍기는 대목이다.

법무법인 율촌의 정영진(鄭永珍) 통상전문 변호사는 “식약청과 한국 업계의 설명대로라면 이번 사태는 중국의 전형적인 ‘힘에 의한 보복’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전면 통상 마찰로 번지지는 않을 듯

앞으로 중국이 한국산에 대해 유해성을 계속 주장하고 한국은 다른 분석 결과를 내놓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세계무역기구(WTO) 동식물 검역·검사협정(SPS)은 ‘유해성에 대해 객관적 과학적 근거가 있을 때 수입을 금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객관적 과학적 근거’의 개념은 모호하다.

일부 식품업계는 “중국의 식품 수거 및 분석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한다.

동국대 국제통상학부 곽노성(郭魯成) 교수는 “양국이 공동 조사하는 방안이 가장 합리적”이라며 “이미 두 나라가 ‘한중 품질검사검역 고위급 협의체’를 조기 가동하기로 했으므로 적정선에서 타협이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중국의 경고성 보복이라 해도 식품 이외의 다른 제품으로 통상 마찰이 번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면전을 벌이기에는 두 나라 모두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난해 미국을 제치고 한국의 최대 교역 상대국으로 떠올랐다. 중국의 처지에서도 홍콩과 조세피난처인 버진아일랜드를 제외하면 한국이 대(對)중국 투자 1위국이다.

주중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질검총국 관계자가 발표 내용을 미리 통보하면서 ‘식품 안전문제가 양국 교역에 문제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중국이 경고 차원에서 이번 조치를 취했으나 마찰이 확대되는 것은 원치 않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중국이 WTO 회원국이란 점도 과거 ‘한중 마늘분쟁’ 때처럼 일부 식품 문제가 다른 상품에 대한 수입 규제로 확대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을 뒷받침한다.

정 변호사는 “중국이 다른 제품에 대해 무역보복을 하려면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11조 등 많은 WTO 규정을 어겨야 하는데 이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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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우 기자libra@donga.com

베이징=황유성 특파원 yshwang@donga.com

김희경 기자susanna@donga.com

▼사람기생충 거의 박멸… 배설물 비료도 안써▼

중국 당국 발표의 사실 여부를 떠나 국산 김치에서도 기생충 알이 나올 수 있는지는 전 국민의 관심사다.

기생충학 전문가들은 국산 배추나 무에 기생충 알이 남아 있을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고 단언했다.

서울대 수의대 윤희정(尹凞貞·기생충학) 교수는 “1960년대부터 30여 년간 벌인 기생충 박멸 사업으로 국내에서는 사람 기생충 자체가 거의 없어진 상태”라며 “국산 배추 등에서 사람 기생충 알이 나올 확률은 극히 낮다”고 말했다.

사람의 기생충이 사라진 데다 사람의 배설물로 농사를 짓는 일도 거의 없어 기생충 알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다만 사람의 기생충 알과 비슷한 돼지의 기생충 알은 발견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 돼지의 기생충 감염률은 3∼5%이기 때문.

아주 희박하기는 하지만 농작물 재배지에 개, 고양이, 조류 등이 배설을 해 기생충에 감염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이 동물의 기생충에 감염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기생충은 또 열에 약하기 때문에 70도 정도에서 5∼10분 가열하면 모두 죽는다. 다만 죽은 것과 살아 있는 기생충 알이 현미경을 통한 검사로는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유기농산물에는 기생충 알이 있지 않겠느냐고 의심하지만 이것도 가능성은 낮다.

유기농 인증을 받으려면 사람이나 가축의 배설물을 사용하면 안 되기 때문.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는 유기농 작물에 대해 이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유기농 작물을 재배하는 농민들은 미생물을 이용해 발효시킨 별도의 유기질 비료를 사용해 작물을 재배한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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