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高高高 유가 쇼크’]원유수입 4위 한국대책은…

  • 입력 2005년 8월 18일 03시 08분


코멘트
정부청사 차량 10부제고유가가 계속되면서 경제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 정부는 17일 공공부문에 승용차요일제를 도입하기로 했으나 좀 더 적극적인 에너지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차량 10부제를 실시하고 있는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경비 근무를 서는 경찰이 차량번호를 확인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정부청사 차량 10부제
고유가가 계속되면서 경제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 정부는 17일 공공부문에 승용차요일제를 도입하기로 했으나 좀 더 적극적인 에너지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차량 10부제를 실시하고 있는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경비 근무를 서는 경찰이 차량번호를 확인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작년부터 지속된 고(高)유가 상황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가 상승은 세계 경제 호황에 따른 수요 증가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세계 경제에 큰 악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고유가가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소비와 생산까지 위축시키는 조짐이 나타나면서 세계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고유가의 부작용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석유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이 장기화할 것으로 보여 각국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 석유시장 구조적 수급불안

국제 유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크게 수요와 공급, 미래의 공급 여력, 산유국들의 정정 불안, 자연재해 등이다.

산유국들의 정정 불안과 자연재해는 일회성 요인이지만 수급 구조는 단기간에 변하지 않는 만큼 만성적인 가격 압박 요인이 된다.

문제는 지금의 고유가가 국제 석유시장의 공급 여력 감소에 따른 것이라는 점.

지난해 세계 석유 소비량은 전년 대비 3.7% 늘었으며 올해도 1.4%가량 증가했다. 1990년대의 연 평균 소비증가율은 1% 이내였다.

반면 산유국들의 생산 능력은 한계에 이른 상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달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하루 평균 원유 생산량은 2774만 배럴로 생산 능력(2916만 배럴)의 94%를 넘었다. 북해산 브렌트유도 생산량이 갈수록 줄고 있고 카스피해 인근 등 중앙아시아 일대는 아직 경제성이 검증되지 않았다.

한국석유공사 구자권(具滋權) 해외조사팀장은 “원유 소비는 산업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좀처럼 줄지 않는 불가역성(不可逆性)을 갖고 있는 데다 원유 공급도 쉽게 늘지 않는다”며 “정제시설 확충은 최소 3∼5년, 유전 개발은 5년 이상 걸린다”고 말했다.

○ 선진국, 고유가 영향권 진입

에너지 소비량이 많은 선진국 경제는 이미 고유가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유가 급등→물가 상승→소비 감소→생산 감소의 악순환 조짐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미국의 소비자물가는 전문가들의 예상치보다 높은 3.2%(전년 동기 대비)인 반면 근로자들의 시간당 임금 상승률은 2.7%에 그쳤다. 실질임금이 물가를 따라잡지 못하면 소비가 위축되기 마련이다.

이를 반영하듯 유통업체인 월마트는 올해 2분기(4∼6월) 실적이 당초 전망보다 악화됐다고 발표했으며 3분기(7∼9월) 예상치도 낮춰 잡았다. 또 지난달 미국의 전체 산업 생산도 0.1% 증가하는 데 그쳐 전망치(0.5%)보다 낮았다.

미국의 소비 감소는 중국과 한국 등 아시아권의 대미(對美) 수출 감소로 이어진다.

올해 들어 월간 물가상승률이 1%대에 그쳤던 영국은 6월 2.0%에 이어 7월에는 2.3%로 올라 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영국은 특히 경제성장률이 올해 2분기에 1.7%에 그쳐 경기는 침체되면서 물가가 올라 스태그플레이션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유가 상승이 서비스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 인상 등 긴축적 통화정책 기조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 한국은행 “성장률 목표 달성 의문”

원유 수입량 세계 4위(2004년 기준)인 한국은 고유가에 따른 직접적인 영향권에 놓일 수밖에 없어 경기회복이 더욱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유가 상승으로 인플레이션 압력과 기업들의 생산 위축은 물론 수출 감소라는 악성 시나리오까지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사상 최고치 경신을 목전에 둔 한국 증시도 고유가에 발목이 잡힌 분위기다. 17일 종합주가지수는 3.68포인트(0.33%) 떨어진 1,113.25로 장을 마쳤다.

한국은행은 고유가 추이가 지속되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또다시 하향 조정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은 지난달 초 유가가 연평균 51달러(중동산 두바이유 기준)에 머문다는 가정 아래 성장률 전망치를 3.8%로 수정 발표했다. 하지만 7월 평균 유가는 52.8달러였으며 이달 16일에는 57.51달러까지 올랐다.

민성기(閔成基) 한은 조사총괄팀장은 “유가가 10% 오르면 성장률은 0.2%포인트 하락한다”며 “유가 추이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정부 “아직은…” 수요억제책 머뭇머뭇▼

정부도 고유가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어 애만 태우는 실정이다.

산업자원부는 17일 정부와 공기업에 한해 승용차 요일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민간부문에 대해서는 참여 차량에 한해 주차료, 통행료 감면 등 인센티브를 주되 강제적인 조치는 시행하지 않기로 했다.

자율적인 대책으로 모자라면 강제적인 에너지 절약 조치를 단계적으로 추진하겠지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라는 것. 자칫 소비 감소를 불러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정부가 그동안 고유가 대책에 너무 소극적이었다는 지적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올해 초 배럴당 34달러대이던 유가가 57달러까지 치솟았는데도 석유 소비가 오히려 늘어난 것은 정부가 적극적인 절약 대책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

중동산 두바이유가 연초 대비 50% 가까이 올랐지만 석유조기경보지수는 8개월째 ‘주의 단계’에 머물고 있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많다.

석유조기경보지수는 정상, 관심, 주의, 경계, 심각 등 5단계로 경계 이후부터 조명시간 단축, 냉난방 온도 조정, 승용차 부제 의무 실시 등 강제조치가 실시된다.

한덕수(韓悳洙)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날 국회 경제상황점검회의에서 “에너지의 50%가 산업 수요이기 때문에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며 “단기적인 수요억제책보다 중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IEA “세계 성장률 0.8%P 하락” 경보음▼

■ 각국 고유가 대책 잰걸음

국제유가가 배럴당 70달러에 육박하면서 세계 각국에 초비상이 걸렸다.

기존 유가 급등 때와는 달리 이번 고유가 기조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면서 세계 각국은 중형자동차에 대한 세율 인상을 비롯해 강력한 에너지 대책을 속속 내놓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17일 “유가 상승세가 올해 말까지 지속될 것”이라며 “고유가가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0.8%포인트 감소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최근 미 의회가 통과시킨 대체에너지 개발과 석유업계 지원을 골자로 하는 에너지 법안에 10일 서명했다. 미 의회는 그동안 에너지 법안 처리에 소극적 자세를 보였으나 최근 유가가 고공행진을 거듭하자 전격적으로 법안을 통과시킨 것. 부시 대통령은 16일 “이 법안이 고유가에 즉각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하겠지만 미국의 석유의존도를 줄이는 시발점을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름 아까운 줄 모르고 펑펑 써대던 미국인들의 소비생활도 변하기 시작했다. 출퇴근용 차량의 연료비 지원을 줄이기 위해 재택근무를 권장하거나 자전거 출퇴근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유럽=프랑스 정부는 17일 4개 경제 관련 부처 장관회의를 긴급 소집하고 고유가 대책을 발표했다. 고유가 대책에는 재생가능 에너지 투자, 정유능력 제고 등이 포함됐다. 도미니크 드빌팽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자동차 운전자들에게 시속 10km씩만 속도를 줄여 줄 것을 간곡히 호소했다.

영국은 고유가로 지난달 인플레율이 정부 억제선을 돌파했으며 공공서비스 요금도 속속 인상되고 있다. 영국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유가 상승에 따른 물가 급등을 막기 위해 정부가 종합적인 에너지 대책을 조속히 마련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중국, 인도=석유 수요가 급상승하고 있는 세계 2위의 에너지 소비대국인 중국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최근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모임에서 “에너지와 자원 절약을 국가정책의 우선순위로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유가에 대한 강력한 가격통제 정책을 강화하는 한편 정유소들이 기름을 비축하지 못하도록 단속을 실시하고 있다.

인도는 석유 소비를 줄이기 위해 지난달부터 가솔린과 디젤유 가격을 각각 9% 인상했으며 태국과 인도네시아도 석유제품의 가격을 올렸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