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금융업 체질’ 아니다?

  • 입력 2005년 7월 7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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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그룹에는 현재 금융계열사가 하나도 없다. LG카드 사태 이후 금융업 부실이 커지면서 카드뿐 아니라 증권과 투신운용 선물(先物)회사까지 모두 떼 내 팔았다.

대규모 분식회계로 곤욕을 치른 SK그룹은 채권단과의 약정서에 ‘금융업에서는 손을 떼겠다’고 약속했다. SK그룹은 투신운용사와 생명보험사를 미래에셋증권에 팔고 SK증권은 시장에 매물로 내놓은 상태.

진출한 분야마다 비교적 큰 성공을 거둔 삼성그룹도 금융 분야에서는 유독 이름에 걸맞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으며 옛 현대그룹도 큰 어려움을 겪었다.

○ 금융업에서는 줄줄이 실패

국내 주요 그룹들이 금융업에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과다한 외형경쟁으로 스스로 발목을 잡으면서 시장에서 퇴출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무엇보다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통해 고속성장을 하는 시장 메커니즘이 외환위기 이후 급속히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과도한 차입경영으로 대우채권 사태를 몰고 온 옛 대우그룹은 금융업부터 손을 떼야 했다. 대우증권과 서울투신운용이 모두 산업은행으로 넘어갔다. 계열사였던 한국종합금융은 가교(架橋) 종금사인 하나로종금에 들어갔다가 결국 우리금융그룹으로 편입됐다.

옛 현대그룹은 국민투자신탁을 인수해 현대투신증권을 발족시켰으나 증권시장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부실이 깊어져 그룹 전체가 흔들리는 위기를 맞았다. 현대투신증권은 미국계 금융그룹인 푸르덴셜에 팔려 지금은 운용회사와 함께 넘어가 있다.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상선이 대주주인 현대증권은 투신과 분리되면서 독자적으로 생존해 있는 상태.

LG그룹은 카드사 외형경쟁의 직격탄을 맞고 결국 금융업 전체를 포기해야 했다. LG카드는 산업은행의 위탁경영을 받으면서 조만간 팔릴 예정이고, 증권과 투신운용 선물회사가 모두 우리금융그룹에 넘어가 금융계열사 직원들은 옷에서 LG그룹 배지를 떼 내야 했다.

한화그룹은 외환위기 직후 부실종금사 정리 때 한화종금을 청산했으며 계열사인 충청은행도 1998년 5개 은행 퇴출과정에서 하나은행에 흡수합병 당했다.

삼성그룹은 금융업 퇴출이라는 ‘극한상황’은 맞지 않았지만 삼성카드의 부실로 계열사들이 무거운 짐을 져야만 했다. 한 외국계 증권사 임원은 “삼성도 증권과 투신운용의 경우 시장 1위라는 ‘삼성 브랜드’에 걸맞은 지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이질적인 문화가 큰 이유

산업,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 나름대로 확고한 위치를 다진 대기업들이 금융업에서 맥을 추지 못하는 이유는 산업과 금융의 경영스타일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라는 게 금융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계 메릴린치 증권에서 리서치 총책임자를 지낸 이원기(李元基) KB자산운용 사장은 “대기업은 전문성이 필요한 금융회사에 제조계열사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한 최고경영자(CEO)를 갖다 놓는 경우가 많다”면서 “제조업과는 전혀 다른 경영환경을 감안하지 않고 외형확장 경쟁에 주력해 금융업 부실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환경이 빠르게 바뀌는데도 대기업들이 적응하지 못하는 것도 이유로 꼽힌다.

박광철(朴光喆) 금융감독원 자산운용감독국장은 “외환위기 이후 금융업에 대한 감독규제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 대기업들이 금융업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업이 과거의 ‘블루오션’이 아닌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레드오션’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김기환(金基煥) 플러스자산운용 사장은 “대기업들이 위험관리에 실패하면서 금융업에서 퇴출되는 사례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SK증권의 JP모건 파생상품 투자 실패와 LG그룹의 카드 외형경쟁, 현대그룹의 옛 국민투신 인수 등이 모두 외형확장 경쟁을 하다가 스스로 발목을 잡은 셈이라는 것이다.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출신인 이종구(李鍾九·한나라당) 의원은 “산업자본이 금융업과 결탁해 산업자본에 무리하게 돈을 대다가 후유증을 앓은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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