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신용대출 “꿈이런가”…은행권 신용관리 깐깐해져

  • 입력 2005년 6월 30일 0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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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1

경기 파주시에서 무역회사를 경영했던 임모(53) 씨. 외환위기 때 사업을 접은 뒤 지금은 트럭을 몰며 근근이 살고 있다. 한때 재기를 꿈꿨지만 마이너스통장 1000만 원 때문에 발목이 잡혔다. 이자를 갚지 못해 ‘꺾기’성 보험까지 들며 추가 대출을 받는 등 몸부림쳤지만 결국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올해 초 신용회복위원회에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했지만 해당 금융회사가 동의하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이제 금융거래는 꿈도 못 꿉니다. 그저 지쳐 갈 뿐입니다.”

#사례2

광주(光州)에 있는 용역관리업체 직원인 권모(32) 씨. 2002년 카드회사에서 1300만 원을 빌렸다가 연체를 했다. 연체금을 갚기 위해 급여를 이체하던 은행에서 신용대출을 받으려 했으나 거부당했다. 대출금이 많고 연체까지 있어 어렵다는 것. 결국 대부업체를 전전하다 연간 200%가 넘는 고금리로 빚만 더 짊어졌다. 퇴직금으로 부채 일부를 갚은 뒤 대부업체를 금융감독원에 신고한 채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한 번 연체하면 신용점수가 30∼40점 떨어지지만 갚으면 겨우 5∼10점밖에 올라가지 않더군요.”》

○ 690만 명은 금융거래 힘들어

금융거래를 할 수 없는 ‘금융 소외’가 심화되고 있다. 금융회사들의 신용관리가 깐깐해지면서 우량 고객에게는 돈이 몰리지만 비우량 고객의 입지는 갈수록 줄어드는 양극화 때문이다.

29일 한국신용정보가 은행연합회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신용등급(총 10등급) 1∼3등급인 우량 고객의 대출 잔액은 작년 3월 말 186조1500억 원에서 12월 말 220조1600억 원으로 9개월간 19% 늘었다. 반면 하위 등급인 7∼10등급은 12% 감소했다.

이 기간에 1∼3등급은 1160만여 명에서 1291만여 명으로 12% 늘었고, 7∼10등급은 726만여 명에서 690만여 명으로 5% 줄었다.

금융연구원 최공필(崔公弼) 선임연구위원은 “7등급 이하 690만여 명은 사실상 은행권의 금융 소외자”라며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람을 포함하면 금융 소외자는 더 많다”고 추정했다.

○ 서민 없는 서민금융

은행권을 이용할 수 없는 사람들이 찾는 곳은 상호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 하지만 서민금융기관도 낮은 신용등급에는 고개를 젓는다.

예금보험공사에 따르면 상호저축은행의 소액신용대출(300만 원 미만) 잔액은 3월 말 현재 1조9000억 원으로 2003년 6월 말보다 27% 줄었다. 반면 이 기간에 담보대출은 11조5000억 원에서 19조5000억 원으로 70% 급증했다.

예보 관계자는 “저축은행이 부동산 기획대출(프로젝트 파이낸싱) 등은 늘리고 있지만 신규 소액신용대출을 거의 안 하고 있어 4월부터는 집계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새마을금고도 사정은 마찬가지. 새마을금고의 대출금 증가율은 2003년 22.3%였지만 지난해에는 3.4%로 줄었다.

○ 신용사회의 그늘

신용등급에 따른 대출 차별화는 금융회사의 자산 건전성을 위해 당연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금융당국의 지도 방침도 여기에 맞춰졌다.

은행의 소액신용대출(500만 원 이하)은 2003년 9월 말 550만 계좌(14조2000억 원)에서 작년 말에는 500만 계좌(11조7000억 원)로 줄었다.

하지만 자산 건전성을 높여도 대출 회수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많다.

한국은행 금융안전분석국 이민규(李敏揆) 과장은 “자산 건전성 제고의 본질은 무조건 리스크를 회피하는 게 아니라 리스크를 적극적으로 ‘관리’해 잠재 수익원을 발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융회사의 지나친 ‘몸 사리기’는 서민들을 사금융권으로 밀어내 사회문제로 비화하면서 국가 전체로도 역효과를 불러온다는 지적도 많다.

최근에는 대부업체들도 신용도가 낮은 사람을 기피해 대출 승인율이 20%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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