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대 게임전시회 E3 르포…초대형 게임 봇물 게이머들 열광

  • 동아일보
  • 입력 2005년 5월 19일 18시 27분



《‘초대형 블록버스터만이 살아남는다.’ 세계 최대의 게임전시회 ‘2005 전자오락박람회(E3·Electronic Entertainment Expo)’가 18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컨벤션센터에서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올해 E3를 화려하게 빛낸 게임들은 대부분 엄청난 제작비를 투입해 만든 대작(大作)들이다. 최근 하드웨어 기술의 발전으로 게임 팬의 수준이 높아진데다 시장의 규모도 영화시장 못지않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미국 엔터테인먼트소프트웨어협회(ESA)에 따르면 작년 미국에서 가장 흥행에 성공했던 영화 ‘스파이더맨2’의 첫날 극장 개봉 수입은 4000만 달러(약 400억 원)였지만 가장 많이 팔린 게임 ‘헤일로2’의 첫날 판매 수입은 1억2500만 달러(약 1250억 원)에 달했다. 게임이 영화보다 더 큰 수입을 올리게 된 것.》

○ E3의 중심에 선 한국게임

블록버스터 게임 시장에 한국 게임업계가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제작비도 크게 늘어 일본이나 미국의 유명 게임과 맞먹는 제작비를 사용한 게임도 많다. 게임 한 편의 제작비가 100억 원을 넘는 경우도 흔하다.

엔씨소프트는 이번 E3 전시회에서 1인칭 슈팅 게임 ‘엑스틸’과 ‘타뷸라 라사’, 최근 한국과 북미 지역에서 선보인 ‘길드워’ 등을 공개했다. 특히 ‘길드워’는 4년간 100억 원 이상의 제작비를 투입한 야심작.

선보이는 게임이 다양해지고 화려해지자 전시회장에서 엔씨소프트 부스를 찾는 관객의 수도 늘었다. 특히 ‘엑스틸’과 ‘타뷸라 라사’를 직접 즐길 수 있도록 설치한 개인용 컴퓨터(PC) 10여 대 앞에는 게임 팬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릴 정도였다.

웹젠은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차세대 게임기 ‘엑스박스360’용으로 만들어 관심을 모은 새 1인칭 슈팅 게임 ‘헉슬리’와 PC용 다중접속 온라인게임 ‘썬’을 선보였다.

특히 ‘헉슬리’는 동시에 접속할 수 있는 인원이 5000명 이상으로 늘었으면서도 8명 정도의 사용자가 접속할 수 있던 기존 게임보다 더 뛰어난 영상을 선보여 관람객의 찬사를 이끌어냈다.

16개 한국게임업체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한국공동관 ‘게임인피니티’에도 다양한 게임들이 선보였다.

E3의 주(主) 전시관은 MS와 EA 등의 미국 회사가 중심이 된 ‘사우스홀’과 소니와 닌텐도 등 일본 회사가 많이 찾는 ‘웨스트홀’로 나뉜다. 그동안 한국공동관은 이 두 곳 대신 관람객의 발길이 상대적으로 적은 ‘켄티아홀’에 설치됐으나 올해는 엔씨소프트, 웹젠 등과 함께 사우스홀에 대규모 전시장을 설치했다.

특히 ‘제이씨엔터테인먼트’의 온라인 길거리 농구게임 ‘프리스타일’과 ‘게임빌’, ‘E3넷’ 등의 회사가 개발한 휴대전화용 모바일 게임 등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 사실적인 차세대 게임

이번 E3의 하이라이트는 일본과 미국을 대표하는 소니와 MS의 차세대 게임기 대결. 이 차세대 게임기는 사실적인 영상처리가 특징이다.

그동안 게임 속 등장인물은 상당히 부자연스러웠다. 영화에 사용되는 컴퓨터그래픽은 미리 움직임을 계산한 뒤 녹화해 재생하면 되지만 게임은 사용자가 조작하는 데 따라 실시간으로 주인공의 움직임을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3’와 MS의 ‘엑스박스360’용으로 각각 개발된 소니의 ‘킬존2’와 웹젠의 ‘헉슬리’는 게임 속 진행 화면이 잘 만들어진 영화용 컴퓨터그래픽 수준을 자랑했다.

한편 MS의 엑스박스360은 PC와 게임 개발 환경이 비슷해 PC용 게임을 만들던 수많은 업체들이 엑스박스용 게임을 개발할 것으로 보인다. PC용으로 인기를 끌던 온라인 게임이 뛰어난 영상 처리 능력을 가진 엑스박스360용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 후속편도 봇물

거대 소프트웨어 업체의 ‘속편 행진’도 이번 E3의 특징.

세계 최대의 게임업체 EA는 ‘배틀필드2’, ‘번아웃 리벤지’, ‘메달 오브 아너: 유로피언 어설트’ 등 인기 게임의 후속편을 대거 선보였다. E3에서 선보인 26종류의 새 게임 가운데 후속작만 20가지에 이를 정도.

이는 제작비가 100억 원이 넘어가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에 인기 게임의 후속편을 내놓는 편이 안전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 NPD그룹은 지난달 미국 시장에 발매된 게임 10개 가운데 8개가 유명 게임의 후속편이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로스앤젤레스=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전문가가 본 미래의 게임 트렌드…“새롭지 않으면 도태”▼



‘온라인’이 화두(話頭)였던 지난해 E3와 달리 ‘2005 E3’에서는 특별한 화두가 없었다.

소니와 MS가 차세대 게임기에 온라인 기능을 포함시키며 논쟁이 끝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업계의 전문가들은 각각 미래를 이끌 게임에 대한 뚜렷한 전망을 갖고 있었다.

○ 모험하는 기업이 살아남는다

“E3를 보면 2, 3년 뒤의 게임 시장이 보입니다. 저는 앞으로 게임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합니다.”

‘E3 2005’에 참석한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은 18일(현지 시간) 한국 기자단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2, 3년 뒤 세계 게임계의 강자(强者)는 창의력 있는 게임으로 모험을 건 후발주자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엔씨소프트는 이번 E3에서 ‘시티 오브 히어로’의 후속편인 ‘시티 오브 빌런’을 제외하고는 모두 완전히 새로운 게임을 선보였다. 새 게임을 통해 시장에 ‘승부수’를 던진다는 의미였다.

○ 후속편도 창의력 경쟁

“위에서 지도로만 내려봤던 스타크래프트 세계에서 직접 뛰고 다치고 전투를 벌인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18일 E3 행사장에서 만난 마이크 모하임 블리자드 사장은 이 행사에서 선보인 ‘스타크래프트: 고스트’(고스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고스트는 지도를 통해 부대를 지휘하던 스타크래프트 게임의 ‘장기판의 졸’에 해당하던 한 등장인물 ‘고스트’를 주인공으로 하는 1인칭 슈팅 게임. 이 회사는 최근 선보였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역시 지도 속 등장인물의 삶을 직접 경험하도록 하는 1인칭 시점의 온라인 역할수행게임(RPG)으로 만들어냈다.

모하임 사장은 “후속편은 원작 게임의 팬을 그대로 끌어올 수 있어 안전하지만 블리자드는 단순히 안전한 길을 걷는 대신 전작을 새롭게 해석해 완전히 다른 게임으로 만드는 모험을 한다”며 “스스로를 부정(否定)할 수 있는 상상력이 블리자드의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 게임과 영화는 하나

할리우드의 도시 로스앤젤레스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게임 스튜디오가 모여 있는 ‘게임의 도시’다.

미국의 게임업체 EA의 로스앤젤레스 스튜디오 최고운영자(COO) 아카디아 김 씨는 이 도시에서 영화와 게임을 하나로 묶는 ‘실험’을 벌이고 있다.

김 최고운영자는 “게임은 예술과 산업의 중간에 있지만 아직 끊임없이 참고하게 되는 ‘교과서 같은 게임’은 등장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