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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5월 7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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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구 직원이 “황사가 심하니 기관지를 보호하셔야죠”라며 황사 방지용 마스크를 선물로 건넨 것.
수년째 기관지염을 앓고 있던 이 씨는 흐뭇하면서도 ‘도대체 어떻게 알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결은 은행의 고객관계관리(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시스템.
이 씨가 수개월 전 “기관지염 때문에 고생한다”고 말하자 창구 직원은 이를 고객 정보로 입력했다. 은행은 황사 시즌이 되면 마스크를 선물해야 할 고객으로 이 씨를 분류했다. 이 씨의 고객번호를 입력하면 ‘황사 마스크 선물 요망’이라는 내용의 팝업 창이 뜨는 것.
하나은행 홍필희(洪必憙) CRM팀장은 “고객이 생년월일, 주소, 가족관계, 종교 등 50개 정도의 정보를 제공하지만 고객과의 대화를 통해 은행이 입수하는 정보는 많게는 400개에 이른다”고 말했다.
○ 은행 CRM은 변화의 중심
은행은 고객 관리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투자 성향, 가족 소식, 의료기록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정보를 수집한다. 은행은 이 정보를 토대로 고객에게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끈끈한 관계를 맺는다.
황영기(黃永基) 우리은행장은 “은행은 금융백화점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열(金宗烈) 하나은행장은 “토털 라이프 케어를 지향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 CRM이 있다. 돈 많은 우량고객 위주로 이뤄졌던 CRM 대상이 중간층 고객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조모(35·회사원) 씨는 올해 여름휴가를 싱가포르에서 보내기로 하고 여행상품을 샀다. 대금은 신한카드로 결제했다.
조 씨는 다음 날 “환전 할인혜택을 받지 않겠느냐”는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신한카드 결제 정보가 신한은행 고객 콜센터로 넘어갔기 때문.
신한은행 개인영업추진부 윤근혁(尹根奕) 과장은 “은행, 증권, 카드, 자산운용 등 여러 회사들이 지주회사 울타리 안에 있기 때문에 고객 통합관리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 빠르게 발전하는 CRM
콜센터와 영업점의 정보 교류는 CRM의 기본이다.
정모(34·자영업) 씨는 “아파트 담보대출 금리를 연 6%보다 적게 내고 싶다. 다른 은행에서 5.8%를 제시했다”며 전화로 우리은행 콜센터 직원과 상담했다. 우리은행은 ‘정 씨가 은행을 찾아오면 가능한지 파악해 5.8%의 금리를 제시하라’는 내용의 메모를 영업점에 보냈다. 정 씨는 결국 연 5.8% 금리로 대출을 받았다.
우리은행은 잠재 우량고객을 발굴하기 위해 ‘소득 추정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세금 및 공과금 납부 현황, 카드 사용 정보 등을 토대로 우량고객이 될 가능성이 있는 고객을 파악해 영업에 활용하는 것.
국내 은행의 CRM은 아직 초기 단계라는 진단도 있다. 실시간으로 고객 정보가 입력되지 않는 데다 고객 정보의 데이터베이스화가 진행 중이어서 모든 고객이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은행 관계자들은 “CRM이 은행에는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하는 기반이 되고 고객에게는 맞춤형 상품을 제공받을 수 있는 토대가 되기 때문에 급속히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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