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지키느라 투자뒷전”…M&A시도 늘며 지분늘리기 바빠

  • 입력 2005년 1월 20일 17시 31분


코멘트
《2004년 11월 9일. SK㈜ 재무담당 이승훈(李承勳) 상무는 이날을 잊지 못한다. 영국계 소버린자산운용이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며 법원에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일부 외국인 때문에 기업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을 느꼈어요. 경영권 방어에 힘쓰느라 수치화하기 힘든 엄청난 손실을 입었습니다.” SK는 지난해 경영권 방어 등의 목적으로 지분 0.34%를 인수했다.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사재를 털어 주식을 사들인 것. 반면 기계장치 등 설비 규모는 2003년에 비해 5% 이상 줄었다.》

국내 주요 기업은 지난해 경영권을 지키느라 투자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금융감독원과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자산 기준 10대 그룹의 내부(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자사주) 지분은 45.8%로 2003년(45.1%)보다 0.7%포인트 높아졌다.

2000년 이후 3년 연속 감소세를 보이던 내부 지분은 지난해 외국인의 경영권 간섭과 인수합병(M&A) 시도가 늘면서 증가세로 돌아섰다.


반면 지난해 6월말 현재 535개 상장기업의 기계장치 보유액은 69조1016억 원으로 2003년 6월말(70조3779억 원)에 비해 1.8% 감소했다.

같은 기간 삼성그룹을 제외한 9개 그룹의 기계장치 보유액은 평균 4.5% 줄었다.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주식을 사 모으는 동안 설비투자 규모는 줄어든 것.

미래에셋 박현주(朴炫柱) 회장은 “기업이 경영권 방어를 우선하면서 미래 성장 동력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현재 두산그룹의 내부 지분은 65.6%로 1년 전보다 13.4%포인트 높아졌다. 두산산업개발 상장과 자사주 취득으로 지분이 급증한 것.

LG그룹의 내부 지분은 같은 기간 5.4%포인트 오른 37.4%. 계열 분리 과정에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등이 지분을 늘린 결과다.

한화(내부 지분 증가율 5.6%포인트)와 삼성(1.3%포인트), 현대자동차(1.0%포인트), 한진(0.9%포인트) 등의 내부 지분도 증가했다.

기업들은 △경기 침체 △노사 문제 △정부 정책의 불확실성 등을 이유로 설비투자 규모를 줄이고 있다.

현대자동차 황유노(黃有老) 이사는 “외국에 비해 노사관계의 유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국내에서 적극 투자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말 현재 두산그룹의 기계장치 보유액은 4950억 원으로 2003년 6월 말(5790억 원)에 비해 14.5% 감소했다.

같은 기간 롯데와 LG그룹의 기계장치 보유액도 9% 이상 줄었다.

기업이 경영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기반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성균관대 최준선(崔埈璿·법학과) 교수는 “외국인 등에 의한 적대적 M&A를 막기 위해 한 주만으로 중요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황금주’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업지배구조개선지원센터 정광선(鄭光善) 원장은 “기업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지배구조가 투명해지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