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銀 시장개입 딜레마]“효과 확신 못하는데 나서자니…”

  • 입력 2004년 11월 23일 18시 14분



22일 ‘실탄’이 거의 다 떨어진 재정경제부를 대신해 원-달러 환율의 추가 하락을 막는 주력 방어군으로 나선 한국은행이 난감한 처지에 빠졌다.

재경부의 요청을 받아들인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고 시장 개입이 효과가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섣불리 나섰다간 손해만 볼 수도 있다.

원-달러 환율이 9월 말 1150원선에서 22일 현재 1065원선으로 7.4% 떨어져 한은도 적지 않은 손해를 보았다.

9월 말 현재 외환보유액은 1744억달러. 한은과 금융계에 따르면 이 가운데 60∼70%, 즉 1040억∼1220억달러는 미국 국채 등의 달러화 표시 자산이다.

이 달러화 자산의 가치는 9월 말 이후 50여일 동안 7.4% 떨어졌다. 원화 기준 8조∼10조원의 평가손실로 추정된다.

한은 관계자는 “외환보유액의 평가손실은 민간기업이 달러화 자산에 투자할 경우의 평가손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외환보유액을 구성하는 자산에 대한 투자는 훨씬 장기로 이뤄지기 때문에 당장 장부상 손실로 현실화하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외환보유액이 과대하다”, “환율 방어에 국부(國富)를 너무 많이 쓴다”는 지적을 모른 척 할 수만은 없는 게 한은의 처지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한은 박승(朴昇) 총재가 ‘국제 외환시장의 대세는 수용하겠다’고 밝힌 마당에 어설픈 개입은 가치가 떨어지는 달러의 보유량만 늘리는 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환전문가들은 한은이 가급적 일본 외환당국과 시장 개입 타이밍을 맞출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무엇보다 서울 외환시장 참여자들이 원-달러 환율과 엔-달러 환율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한국보다 시장 개입으로 얻을 게 더 많다는 점도 이런 예상을 뒷받침한다.

한화증권 홍춘욱(洪椿旭) 투자전략팀장은 “11월 들어 국제유가 급등세가 꺾이고 엔화 강세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일본에선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엔화 강세는 수입 물가의 하락을 뜻하며 이는 일본 국내 물가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한은 관계자는 “일본 외환당국이 개입한다면 우리도 비용을 많이 들이지 않고 시장 개입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철용기자 lcy@donga.com

▼환율 소폭 올라 1065.9원▼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외환당국의 시장 개입에 힘입어 소폭 올랐다.

2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0.6원 오른 1065.9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장 초반 달러 ‘팔자’ 물량이 쏟아지면서 한때 1060원까지 하락하기도 했으나 외환당국이 꾸준히 이 물량을 사들여 소폭 오른 채 장을 마감했다.

이철용기자 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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