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파동' 어두운 파장

  • 입력 2004년 2월 13일 19시 04분


▼원료 수입업체 자금난 ‘허덕’▼

“원자재 값은 몇 달 사이 2배로 올랐는데 유전스(기한부어음) 한도는 그대로여서 원자재 구입을 못하고 있다.”

원자재 값이 급등하자 원자재 수입업체들이 수출에 필요한 무역금융 한도를 늘리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포스코 등에 바나듐이라는 광석을 공급하는 우진산업 한상웅 부장은 “원자재 가격이 작년 9월에 비해 230%나 올라 무역금융을 이용해 물량을 공급하는 데 차질을 빚고 있다”고 밝혔다.

주물 생산에 필요한 코크스(석탄의 일종)와 선철(철광석의 1차 가공물)을 수입하는 지오자원의 지병천 사장도 요즘 은행을 찾아다니느라 바쁘다.

지 사장은 “작년 이전만 해도 가격은 한 달에 1∼2% 변동했는데 요즘에는 10∼20%나 오른다”며 “20년간 원자재를 수입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인 만큼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예 자금이 모자라 수입을 중단한 회사에 비하면 기한부어음의 한도액 확대를 요구하는 곳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무역협회 고영만 팀장은 “이라크전쟁이나 9·11테러 때는 금융당국이 융통성을 발휘해 관련 업체에 자금 숨통을 틔워주었는데 원자재 값 폭등에 대해서는 아직 가시적인 조치가 없다”며 “철강 곡류 등 원자재 수입 전반에 대해 긴급자금을 투입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무역협회는 13일 한국은행에 원자재 구매용 긴급자금을 시중은행에 공급할 것을 요청했다.

허진석기자 jameshuh@donga.com

▼수입의존 큰 업종 매출 비관적▼

‘원자재 파동’이 기업 매출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산업자원부가 전국 6058개 기업을 대상으로 작년 12월 17일부터 20여일간 조사해 13일 작성한 ‘제조업 경기실사지수(BSI)’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들은 올해 1·4분기(1∼3월) 실적이 작년 4·4분기(10∼12월)보다 더 나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부문별 BSI는 매출이 4.2, 내수 4.1, 수출 4.3, 설비가동률 4.3, 고용 4.2 등으로 나타나 거의 모든 항목에서 상황이 개선될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인 4.0을 넘었다.

BSI가 4.0을 넘으면 전 분기보다 상황이 좋아짐을 뜻하고 4.0 미만이면 악화됨을 뜻한다.

하지만 업종별 매출 전망에서 원자재의 수입 의존도가 큰 조선(造船)이 3.95, 전기기계 3.94, 비금속·석유정제 3.46, 목재·종이·인쇄 3.84로 조사돼 제조업 전체 평균(4.22)에 크게 못 미쳤다.

반면 원자재 값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은 반도체(4.74)나 전자(4.35) 정밀기기(4.58) 등의 BSI는 평균보다 높아 실적이 전 분기보다 나아질 것으로 예상하는 기업이 많았다.

원유 의존도가 큰 화학의 BSI도 4.26으로 나타났지만 이번 조사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결정으로 국제 유가(油價)가 오르기 전에 실시됐음을 감안하면 다음 조사에서는 지수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편 지역별로는 서울(5.17) 경기(5.21) 인천(5.00) 등 수도권과 대전(5.05) 충남(4.69) 광주(4.45) 울산(4.76) 등이 상대적으로 경기전망을 낙관적으로 내다봤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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