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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8월 25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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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한국네슬레 서울사무소에 한때 나돌았던 섬뜩한 구호들이다.
30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재미교포 사업가 이삼휘(李森徽) 한국네슬레 사장의 눈에 비친 한국의 노동문화는 너무도 살벌하다.
자신에게 쏟아진 욕설이 너무 험악해 ‘노조의 주장과 구호를 번역해서 보내라’는 네슬레 본사(스위스)의 지시에 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그대로 알려질 경우 한국의 체면이 땅에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외국인 직원들을 모두 철수시키라’고 할 것 같아서다.
“지난달 초 파업이 시작된 뒤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내일이면 타결되겠지’ 하면서 결정을 하루하루 미뤘죠. 한번 냉동건조실 스위치를 껐다가 다시 가동하려면 5, 6주는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곧 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는 한국 정부의 안일한 인식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외국기업은 법과 원칙에 의해서 돌아갑니다. 한국 정부는 법과 원칙을 얘기하지 않고 ‘노조하고 잘 협상해서 마무리하라’는 얘기만 합니다. 한국에 투자하라고 하면서 (노조의) 불법적 행태를 고치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습니다.”
이 사장은 이어 “한국 정부가 현실을 너무 모르고 있다. 외국인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이런 환경에서 투자하지 않는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네슬레는 25일 서울사무소를 폐쇄했다. 임금인상폭과 종업원 이동배치 문제 등을 놓고 지난달 7일 노조가 파업을 시작한 지 50일 만의 일이다.
이 사장은 무노동 무임금 원칙도 고집스럽게 지키고 있다. 그는 며칠 안에 또 다른 중대한 결정들을 내려야 한다.
충북 청주시의 냉동건조커피 생산공장도 직장폐쇄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다. 나아가 청주공장 완전철수를 건의할 것인지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350여명이 일하는 청주공장은 4, 5년 전만 해도 세계적인 다국적 종합식품업체 네슬레의 9개 건조커피 생산공장 가운데 생산성 1위로 꼽혔던 곳. 그러나 해마다 큰 폭의 임금인상이 이어지면서 이미 생산성이 4위로 밀려난 상태다. 고임금으로 유명한 독일 공장보다도 생산성이 떨어졌다.
세계 곳곳에 500여개의 사업장을 둔 네슬레가 전체 매출의 0.3%밖에 안 되는 한국 시장에서 한국 노동자들의 고용유지를 위해 언제까지고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나오리라 생각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게 않을까.
성동기 경제부기자 espr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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