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문제 있다" 연금공단 차장급 직원 자살

  • 입력 2003년 8월 6일 16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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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근무하던 차장급 직원이 국민연금제도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채 자살,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4일 오후 10시경 국민연금관리공단 남원지사 가입자관리부 송모차장(40)이 사무실에서 목을 맨 채 숨져있는 것을 부인과 회사 동료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송씨의 부인은 밀린 업무가 많아 늦겠다던 남편이 전화를 해도 받지 않자, 회사 동료에게 연락해 함께 회사를 찾아왔다가 남편의 시신을 발견했다.

송씨는 평소 자신이 사용하던 컴퓨터에 유서를 써 놓았으며, 조용한 음악을 켜 놓은 상태였다.

송씨는 '이 세상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남기는 글'이라는 A4용지 2장분량의 유서를 통해 "국민연금에 온지도 벌써 4년 7개월이 지났지만 슬픔이 훨씬 더 많았고, 보람을 느낀 적이 한번도 없었다"면서 "오늘도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했다. 먹고 살기 힘들다는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보험료를 조정하겠다는 문서를 만들었다"며 괴로운 심경을 토로했다.

또 송씨는 유서에서 "정말 소득조정이 필요한 일이라면 법과 제도로 뒷받침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올려놓고 항의하면 깎아주고 큰소리치면 없던 걸로 해주고 지금은 이것이 현실 아닌가"라며 "국민을 위한 국민연금이라면서 지금까지 난 국민연금을 칭찬하는 사람을 한번도 본적이 없다"고 밝혔다.

송씨는 국민연금의 미래에 대해서도 "지난해에는 납부예외율 축소때문에 벙어리 냉가슴을 앓았는데 산을 하나 넘고 나니 소득조정이라는 더 큰 강이 버티고 있다"며 "내가 하는 일이 이렇게 부실한데 5년, 10년 그 뒤에 벌어질 일들을 생각하면 정말 두렵다"고 적었다.

송씨와 함께 근무했던 사무실 직원은 "(송씨가) 쾌활하고 자상한 성격인데다 유머도 있어서 술자리를 주도하는 편이었다"면서 "지금 돌이켜보니 속에 있는 말을 감추느라고 그런 것 같다"고 허탈해했다.

또 다른 직원은 "평소에도 힘들어했다. 팀회의에서는 소득조정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면서 "팀원들이 대부분 소득계산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점에 동의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송씨는 유서의 마지막 부분에 "저 하나 없다고 달라질 것 하나 없겠지만, 제 목숨을 걸고 호소하고 싶습니다"며 "정말 국민들한테 사랑받는 국민연금을 만들어 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내일도 어제처럼, 오늘처럼 산다면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라며 제도의 개선을 당부했다.

한편 송씨는 가족들에게 "일주일전에 사준 노란 자전거가 아들녀석에게 마지막 선물이 되었다"라며 "이런 아들을 남겨놓고 가려는 제 마음도 미어지고 저절로 눈물이 흐른다"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나타냈다.

송씨는 아내가 몸이 허약해 어렵게 얻은 6살 짜리 아들이 있으며, 가정은 화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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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건일 동아닷컴기자 gaegoo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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