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경협사업 어떻게 되나

  • 입력 2003년 8월 4일 15시 58분


정몽헌(鄭夢憲)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이 4일 자살하자 그가 주도적으로 이끌어 온 남북 경제협력 사업에 차질이 생기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우리 정부는 경협이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며 불끄기에 나섰다. 그러나 정작 다급해 진 것은 북측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북측, 정회장에 깊은 신뢰 표시

북한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은 정 회장의 자살 원인을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정 회장이 아버지인 고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에게서 물려받은 남북 경협 사업을 추진하다가 수사와 재판을 받는 몸이 된 데다 북측도 정 회장에게 경협 사업 속도 부진 등을 이유로 모종의 고민을 안겨주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러나 현대의 경협 사업이 최근 속속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이 추측은 근거가 약하다.

북측은 9월로 예정된 평양시 류경정주영체육관 준공식에 정 회장을 포함한 내빈을 판문점을 통해 평양까지 육로로 영접하는 등 정 회장에 대한 신뢰가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7월28일부터 3박4일 동안 북한에 다녀온 남성욱(南成旭)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안내원들이 '정 회장이 준공식을 거창하게 할 것'이라며 높은 신뢰를 표시했다"고 말했다.

6월13일에는 금강산 육로 관광을 7월 초부터 시작하기로 북측과 합의했고 같은 달 14일에는 남북 동해선과 경의선이 연결됐다. 같은 달 30일에는 개성공업지구 착공식이 열렸다.

또 개성시 육로 관광도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

▼당분간 경협 차질은 불가피할 듯

어쨌든 정 회장의 갑작스런 자살로 북한의 화해 무드와 함께 급물살을 타던 대북 경협사업은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단기적으로 이날 베이징(北京)을 통해 평양으로 들어갈 예정이던 류경정주영체육관 준공식팀의 방북이 취소됐고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실무협의 등이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조명철(趙明哲)대외경제정책연구소 박사는 "현대아산에 의한 대북 경협은 대주주인 정 회장의 뚝심으로 추진돼왔다"며 "이제 그런 뚝심을 가진 사람이 없어져 향후 남북 경협 사업이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정세현(丁世絃) 통일부 장관은 "현대아산의 경협 사업은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추진되고 있어 정 회장의 사망이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아산도 이날 경협의 계속적인 투진을 발표했고 만일의 경우에도 한국관광공사(금강산관광)나 토지개발공사(개성공단)가 동업 형식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북한 당국의 혼란이 더 클 것

정작 곤란한 지경에 빠진 것은 경협의 상대방인 북측이라는 지적이 많다.

북한은 외부와 협력 사업을 하기 전 상대방을 까다롭게 고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상대방을 신뢰할 수 있는지를 여러 차례 검증한 뒤에야 솔직한 대화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현대의 경우 정 전 명예회장이 연고를 바탕으로 1989년부터 방북해 신뢰관계를 형성했고 정 회장은 아버지의 대를 잇는 자격으로 협력사업을 벌여왔다.

남 교수는 "김윤규(金潤圭)현대아산 사장 등 전문경영인이 있지만 자금 집행을 결정할 수 있는 대주주가 아니어서 북측이 누구를 대화 파트너로 삼을지 고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을 인도적으로 돕는 단체의 관계자는 "핵 문제가 해결된 뒤 북측이 기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개방 파트너의 수장이 사라진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북측은 특히 이달 6일 남북경협에 관한 4개 합의서 발효통지문을 남측과 교환한 뒤 북한 전역에 남측 기업의 투자를 개방하는 획기적인 조치를 취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는 북측이 정 회장의 사망과 관계없이 적극적으로 경협 사업에 참여할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정 장관은 "철도연결 개성공단 건설 등 현대아산의 경협 사업에 북측이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접근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북측은 이날 공식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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