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명품]상품은 나이 들지만 ‘상품 옷’은 젊어진다

  • 입력 2003년 4월 9일 16시 56분


1960대▼갈색병의 '칠성사이다' 심리적 우월감 자극▼청춘스타들 영향으로 화장품용기 화려해져
1960대▼갈색병의 '칠성사이다' 심리적 우월감 자극
▼청춘스타들 영향으로 화장품용기 화려해져
소비자들의 요구는 늘 변덕스럽다.

어떤 때는 많은 기능과 가벼운 맛을 좋아하다가 곧 심플한 기능과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기 일쑤다.

그래서 수십년간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장수상품들은 늘 부러움과 존경을 받는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장수상품의 비결이 반드시 품질과 맛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랫동안 소비자들의 눈과 손을 붙들어 맨 변화무쌍한 ‘외모’도 숨겨진 장수상품의 비결 중 하나이다.

장수상품들은 우리 국민들의 감정 변화에 따라 용기와 라벨의 변신을 계속해 왔다.

▽1960년대〓당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추진한 각종 경제정책은 우리 국민에게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다줬다. 하지만 몇몇 현명한 상인들은 경제적 풍요 자체보다 빈부 격차 및 부(富)에 대한 사회적 부러움에 더욱 주목했다.

롯데는 갈증 해소를 위해 물이 아닌 탄산음료를 마시는 사람들의 심리적 우월감을 자극했다. 칠성사이다의 병 색깔을 갈색으로 정해 병 밖으로 흘러나오는 맑은 탄산음료를 더욱 강조한 것. 소풍날이면 이 갈색병은 어린이들의 자랑거리였다.

당시 신성일, 엄앵란 등 청춘스타들은 국내 화장품업계의 용기 제작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직사각형, 정사각형 용기에 이름만이 덩그러니 적힌 라벨이 전부였던 화장품 용기는 이때부터 조금씩 화려한 꽃 장식과 물결무늬를 갖기 시작했다.

진로 소주병은 ‘진로’라는 글씨가 병에 돌출되도록 새겨 넣어 손으로 제품명을 느끼도록 했지만 그 외의 시각적 요소는 거의 없었다.

▽70년대〓용기 디자인의 차별성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을 넘어서부터였다.

1970년대▼영문이름 그대로 사용 '부라보콘'美製논란

초고속 경제성장으로 소비자들의 씀씀이가 커지자 한 품목에도 수많은 경쟁상품이 쏟아졌다. 인기상품이 나오면 곧바로 비슷한 품질과 맛을 지닌 상품이 출현했다. 용기 및 라벨 디자인이 상품경쟁력의 결정요인 중 하나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태평양 아모레 ‘삼미로숀’의 용기는 기존 직사각형을 벗어나 허리가 잘록하고 위쪽이 볼록한 도자기의 모습으로 변했다.

미국 문화가 급속히 쏟아지면서 영문 이름을 그대로 쓰는 상품이 인기를 끌었다.

해태제과의 부라보(Bravo)콘은 72년 남북적십자회담 당시 북한측 인사로부터 ‘미제(美製)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통기타 문화에 빠진 20, 30대에게 ‘맑음과 투명함’은 곧 부정부패로 얼룩진 상류층과 반대되는 키워드였다. 롯데는 칠성사이다의 무카페인, 무인공색소, 무인공향의 3무(無) 전략을 반영해 병을 날씬하고 투명하게 만들었다.

진로소주의 라벨에 파란색이 쓰이기 시작한 것도 이때이다.

▽80년대〓컬러TV의 등장, 교복자율화, 해외여행 자유화 등이 이뤄진 80년대는 개성의 시대였다.

1980년대▼'개성의 시대'반영 네모난 유리소주병 등장

각 상품들은 남다른 외모로 소비자들의 시선을 잡기 위해 수많은 디자인 및 크기로 포장되었다.

진로소주는 300mL 유리병 외에도 200mL 종이팩 용기를 만들었다. 사이다, 콜라 등 탄산음료 시장에서는 유리병 대신 캔과 플라스틱 PET병들이 인기를 끌었다.

한편 컬러TV의 등장은 소비자들의 색감을 크게 높였다. 제조업체들은 제품 자체와 용기에 수많은 색을 입히며 색채 연구를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이다.

▽90년대〓힙합문화의 냉소성과 TV드라마 ‘모래시계’의 뜨거움이 공존하면서 소비자들은 더욱 세밀해지고 변덕스러워졌다.

1990년대▼LG '페리오치약' 10년간 디자인 안변해
▼애경 식기세제 '트리오' 노란색 용기 고집

제품의 생명주기가 갈수록 짧아져 신제품으로 나온 지 한 달도 안 돼 또 다른 신제품을 내놓아야만 됐다.

이 시기 장수상품들은 오히려 용기 디자인 교체에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용기 디자인을 자주 바꾸는 것보다 이미 구축된 이미지를 보존하는 것이 신상품과 차별화시키는 데에 더욱 유리했던 것이다.

LG생활건강의 ‘페리오’ 치약은 90년대 10년 동안 겉모습을 거의 바꾸지 않았다. 애경의 식기세제 ‘트리오’도 노란색 용기를 고집했다.

진로 마케팅팀 관계자는 “장수상품은 소비자들의 오래된 연인과 같다”며 “장수상품의 최근 용기 디자인은 바로 오랫동안 이해해온 소비자들의 선호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