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속의 에로티시즘]난 네가 필요없어

  • 입력 2002년 9월 12일 16시 14분


스위트&내스티의 광고. 여성들을 위한 ‘딜도’(왼쪽)와 남성들을 위한 ‘양’이 소재다.
스위트&내스티의 광고. 여성들을 위한 ‘딜도’(왼쪽)와 남성들을 위한 ‘양’이 소재다.
○스위트&내스티社 에로용품 광고

죽부인이라 불리는 것이 있다. 대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원통형 형체의 이 죽부인은 발이며 팔을 떠 걸고 더운 여름을 나기에 딱 알맞은, 여름 한 철만큼은 진짜 아내보다 더 가까이 하고 싶은 가짜 아내다. 대나무의 표면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에 여성의 살갗이 우선 순위에서 밀린 셈이다. 외국에도 죽부인이 있다. 주로 열대지방에서 등나무로 만들어 손발을 얹던 일종의 베개였는데 더치 와이프(Dutch wife)라 불렀다. 이것 역시 부인(wife)이란 이름을 갖다 붙인 것을 보면 하나의 물건에 동서양 모두 같은 아이디어를 담았음을 알 수 있다. 그 더치 와이프가 이젠 남성을 위한 여성 대용 섹스용품의 총칭으로 일반화되어 있다.

일종의 마네킹이라 할 수 있는 더치 와이프는 여성의 형체를 본뜬 모사물이다. 플라스틱 인형에서부터 공기 주입식의 비닐 제품까지 소재도 다양한데, 최근 외국에서는 여성 속살집과 똑같은 모양을 갖춘 ‘핫체리’나 ‘섹시 도린’ 같은 인형이 남성 독신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한다.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것은 역시 디테일에 강한 민족, 일본의 더치 와이프다. 체액·체모·두발 등을 변형하고 화장을 시킬 수 있는 것에 이르기까지 종류가 다양하며 심지어 생리까지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제품도 있다고 한다. 이 정도면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언급처럼 모사물, 즉 시뮬라크르가 실체를 대체하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을 위한 섹스 기구는 주로 남성의 성기 모양을 본뜬 딜도(dildo)인데, 그 역사가 길다. 기원전 수세기부터 있었던 이 기구는 초기에는 주로 진흙으로, 중세에는 금이나 은 등의 귀금속 또는 상아로도 제작되다가 고무가 발견된 뒤로는 고무 제품이 주류를 이뤘다. 우리 나라에서도 옛날에는 나무를 깎아 만든 딜도가 홀로 된 여인들의 긴긴 밤을 은밀하게 달래 주었다고 한다. 이것 역시 일본 제품을 따라올 것이 없는데 일본의 딜도는 촉감이나 온도에서 거의 실물과 같게 제작돼 실제 섹스의 느낌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가히 감각에서도 시뮬라크르가 실체의 느낌을 대체해가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 두 시뮬라크르의 실체를 알리는 광고를 보자. 에로용품 전문제작회사인 미국의 스위트 앤드 내스티(Sweet & Nasty)의 제품광고다. 딜도편에는 바이브레이터 형 딜도가 놓여 있고 그 위에 “남자. 누가 그들을 필요로 할까?”라는 카피가 적혀 있다. 다시 말해 실제 남성의 페니스보다 더 훌륭한 모사품이 있는데, 누가 남자를 상대하겠느냐는 배짱이다.

더치 와이프 편에는 여성이 아니라 양이 등장한다. 양은 질의 질감이 여성과 가장 흡사하다 하여 변태적인 행위에 빈번하게 활용되던 짐승이다. 카피는 이번엔 반대로 “여자. 누가 그들을 필요로 할까?”라는 내용으로 남성에게 섹스의 판타지를 경험해 볼 것을 권유한다. 그 아래에 작은 글씨로 “수세기 동안 양치기들이 누려왔던 만족감을 느껴보십시오”라는 카피로 수간의 역사성까지 들먹인다. 양의 눈을 짙게 화장하고 마릴린 먼로처럼 입가에 점까지 찍어 놓은 에로틱 상상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이 두 편의 광고는 합법적인 매춘 광고다. 돈을 통해 성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실체가 아닌 가짜를 통한 대체 성행위란 것이 다를 뿐이다.

우리는 모사품을 통한 모사경험의 세계에 살고 있다. 전쟁의 실체를 전쟁 영화를 통해서 보아 왔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이라는 섹스에서도 딜도, 더치 와이프와 같은 모사물을 통해 대체 섹스를 나눈다. 이제 곧 실제 상황과 똑같은 오감까지 느낄 수 있으며 더 큰 쾌감까지 경험할 수 있는 사이버 섹스의 세상이 현실화된다 하니 누가 실제 인간과 섹스를 나누고자 할 것인가.

가상이 현실처럼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능가해 버리는 세상에 살고 있다. 내가 진짜라고 말할 수 있는 자가 누구인가?

김홍탁 광고평론가·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디렉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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