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인맥 관리가 가능했던 것은 특유의 친화력에 힘입은바 크다. 광주(光州) 출신인 그는 밉지 않은 육두문자(?)를 전라도 사투리에 양념처럼 집어넣는 화술(話術)로 상대방을 편안하게 만든다. 여기에 타고난 부지런함도 큰 영향을 미쳤다.
주간 단위로 아는 사람들에게 안부전화를 하고, 많을 때 하루 4∼5차례에 이르는 경조사에도 빠짐없이 참석한다. 심지어 경남기업에 5년 이상 근무했다가 퇴직한 직원의 경조사에 본인 명의의 화환을 보내도록 하고 반드시 챙길 정도.
조 사장이 인맥 관리에 관심을 쏟는 것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람이 곧 자산이고 힘이 된다”는 신조 때문.
67년 한양대 공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새한자동차 등을 거쳐 77년에 건설업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대상건설 부사장,성북역사㈜ 대표이사, 우면산개발㈜ 대표이사, 한국중공업 건설사업본부 부사장 등을 지낸 뒤 99년말 수십 대 1의 경쟁을 뚫고 당시 대우그룹 계열사였던 경남기업 공채사장으로 뽑혔다.
조 사장은 99년 1380억원의 적자를 내며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처한 경남기업을 지난해 흑자기업으로 돌려놓았다. 올 상반기에도 36억원의 흑자를 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조기 졸업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평. 그는 “임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일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데 주력했을 뿐”라며 경영실적 개선의 공을 아랫사람들에게 돌렸다.
그는 “경남기업은 국내건설면허 2호, 해외건설면허 1호, 대형주택업체 인증인 주택건설지정업체 면허 1호를 보유한 우리나라 건설업의 자존심 같은 기업”이라며 “지금까지의 경영 성과를 볼 때 경영정상화는 시간 문제이므로 지켜봐 달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황재성기자>jsonh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