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경기부양 효과 없다

  • 입력 2001년 7월 31일 19시 41분


‘예금금리 연 4%대, 대출금리 7%.’

우리 경제의 숙원이었던 저금리시대가 왔으나 경제는 꿈쩍도 않고 있다. 금리인하가 경제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되레 부작용만 준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금리가 떨어지면 기업의 투자가 늘어나는 게 지금까지의 정석이다.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다. 기업의 평균대출금리가 6월 중 7%대로 떨어졌지만 설비투자증가율은 작년 5월 30.4%에서 올 5월에는 -6.6%로 급락했다.

금리와는 반대로 움직인다는 주가도 내리막이다. 6월 중순까지만 해도 600을 넘던 종합주가지수는 지난달 25일 500선을 위협했다. 과거에 작동하던 금리인하효과는 사라져 버렸다. 금리인하→소비와 투자증가→경기활성화로 이어지는 경기부양 메커니즘이 먹혀들지 않는 것이다.

그 결과는 성장이 둔화되고 인플레와 실업을 걱정해야 할 상황. 경제성장률은 올해 3.8∼4.5%에 머물러 잠재성장률(5∼6%)을 밑돌고 소비자물가는 4.4%나 오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6월에 3.3%로 떨어진 실업률도 4%대로 올라설 것이란 분석이 많다. 성장 물가 실업이 4%에 몰리는 ‘트리플4’시대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저금리 효과 왜 없나〓올 들어 한은이 두 차례에 걸쳐 콜금리를 0.5%포인트 내렸지만 경제는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다(그래픽 참조).

금리인하의 약효가 없는 것은 경제에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다. 금융통화위원회의 한 위원은 “톱니가 고장났는데 기름만 잔뜩 친다고 기계가 돌아가겠느냐”고 반문한다. 정운찬 교수는 “한국경제가 유동성함정에 빠진 만큼 금리를 내리는 것보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지적한다. 김병주(金秉柱) 서강대 교수는 “경제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타이밍이 중요하다”며 “9월말이나 10월초에 가서 4.4분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가신 뒤에 금리를 내리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강조한다.

“기업들이 싼 금리로 돈을 빌려 대출금을 갚은 뒤 남은 돈은 단기금융상품에 넣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대기업 자금담당자)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바로 불확실성이 큰 탓이다.

▽저금리의 부작용〓시중에 풀린 돈이 주식시장이나 대출시장으로 흐르지 않고 머니마켓펀드(MMF), 수시입출금식예금(CDMA) 등 단기상품에 머무르고 국채나 우량회사채의 단타매매를 통한 단기차익을 겨냥, 머니게임화하고 있다. 일부는 부동산이나 골프회원권 등 실물로 옮겨가 서울 강남지역의 아파트값이 가파르게 오르고, 골프회원권 값이 상승하고 있다.

저금리의 불똥은 생명보험회사로도 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생보사가 고객에게 약속한 금리인 예정이율은 평균 7.8%나 되나 저금리로 인해 벌어들이는 수익률은 평균 4.7%에 불과하기 때문. 금융연구원 정재욱(鄭宰旭) 박사는 “지금까지 지방 신설사가 주로 문을 닫았지만 저금리가 지속될 경우 기존 대형사도 상당한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적정금리는 얼마〓통상 적정금리는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에 위험에 따른 가중치(리스크 프리미엄)를 합한 것으로 계산된다. 이 경우 우리나라 적정금리는 콜금리 등 단기금리는 5∼6%(한국개발연구원 김준일 박사), 장기금리는 8%대(한은 정규영 정책기획국장)인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경제연구원 이인실 금융재정연구센터소장은 “현재 금리가 적정금리보다 낮다”며 “금융시장의 왜곡이 해소되지 않아 금리를 내려 경기활성화를 유도하는 것은 별다른 효과가 없는 만큼 구조조정 등 미시정책을 통해 불황을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찬선기자>hcs@donga.com

▼유동성 함정이란…돈풀고 금리낮취도 경기침체▼

돈을 풀고 금리를 낮춰도 투자와 소비가 늘지 않아 경기활성화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을 가리킨다. 1920년대 세계대공황 때 돈을 풀었지만 경기가 살아나지 않음에 따라 존 메이나드 케인스가 제기한 학설.

최근 들어서는 일본에서 3월 ‘제로금리’로 복귀했지만 일본경제가 계속 침체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함에 따라 다시 거론되고 있다. 또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올 들어 6차례에 걸쳐 금리를 2.75%포인트 인하했지만 미국경제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미국에서도 통화금융정책의 약효가 없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은이 지난달 5일 콜금리를 0.25%포인트 내릴 때 일부 금통위원이 인하에 반대했던 것도 유동성 함정을 걱정한 데 따른 것.

케인스는 한 나라의 경제가 유동성함정에 빠졌을 때는 금융통화정책보다는 재정정책을 펴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준일 박사는 “현 상황에서 금리를 더 내리는 것은 물가와 환율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며 “국내총생산(GDP)의 1% 정도 재정적자를 낼 경우 약 20조원의 추가수요가 발생한다”며 “재정정책이 더 유효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찬선기자>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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