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금융대란]정부 당혹… 갈팡질팡…

  • 입력 2000년 12월 26일 19시 00분


정부가 고심하고 있다.

영하 10도의 강추위와 크리스마스 연휴라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국민 주택은행 노조의 파업 투쟁이 수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 특히 연휴 바로 다음날인 26일 국민 주택은행 창구가 마비되면서 시민들의 불편이 잇따르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금융 혼란 현실화되다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정부는 국민 주택은행의 합병을 은행권 구조조정 전체를 좌우할 ‘시금석’으로 보고 정면돌파라는 강수를 던졌다. 노사정 위원회에서 양 은행의 합병은 ‘노조와 협의해 진행하겠다’는 약속을 한 이튿날 국민 주택은행장이 전격적으로 합병 선언 발표를 유도한 것. 노조의 반발쯤은 문제될 게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연휴를 넘기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던 양 은행 노조의 농성이 6일째 계속되고 금융 혼란이 현실화되자 당혹감에 휩싸여 있다. 은행 영업을 부분적이나마 정상화시키기 위해 통합점포 운영, 금감원 직원 파견 등의 대책을 내놨으나 이마저 현장 직원들의 비협조로 사태 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있는 상황.

정부의 원칙은 확고하다. 일단 노조가 요구하고 있는 양 은행 합병 무효라는 조건은 결코 수용할 수 없으며 현 단계에서 고려할 수 있는 문제는 공권력 투입시기와 파장,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고객 보호를 위한 조치들뿐이라는 것.

금감위 고위 관계자는 “경찰을 투입해 노조원을 해산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 이후 노조원들이 업무에 복귀하지 않을 경우 영업 정상화가 상당기간 어려워 이에 대한 대책을 논의중”이라고 밝혔다.

▼구조조정 명분 퇴색 우려▼

▽노조와의 기(氣)싸움〓정부는 일단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노조에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돼 조합원들의 업무복귀를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여론을 통해서 은행 합병 여부는 경영권차원의 문제로 노조와 협상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또 경영진과 대주주가 원하는 합병이 노조의 반발로 성사되지 않는다는 것은 시장자본주의와 배치되는 것으로 ‘국가신인도’에 관한 문제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원칙론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고민은 은행 고객들의 불편에 있다. 은행 창구업무는 제조업체와 달리 국민의 실생활과 직접 연관돼 있기 때문. 당장 돈을 찾거나 보내고, 수표를 바꾸고, 어음을 결제 받는 일이 급하지 일반 국민에게 ‘금융구조조정’과 같은 구호가 ‘먼나라’얘기일 수밖에 없기 때문. 따라서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민심 이반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두 은행은 거래계좌 2300만, 점포 1000여개로 국내 은행 전체 거래고객의 25%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수도권의 경우 30%를 점하고 있다.

▼"노조 달랠 방법이 없어…"▼

▽설득 수단이 없다〓더구나 답답한 것은 노조를 설득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것. 두 은행장은 이미 노조원들에게 합병시 강제 인력감축은 없으며 만약 명예퇴직을 실시해야 할 경우 금융권 최고액의 명퇴금을 지급하겠다고 선언해 놓은 상태다. 금감원 관계자는 합병시에도 인력을 강제감축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도 노조가 반발하는 데야 무슨 설득 수단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따라서 정부 일각에서는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각종 조치를 시행하면서 조기에 공권력을 투입해 파업 농성을 물리적으로 중단시킨 뒤 노조원 개별 접촉을 통한 ‘각개 격파’ 방식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훈기자>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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