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다 내놓고도 경영원 유지?…현대전자 '실험' 주목

  • 입력 2000년 11월 21일 18시 34분


‘한국에 미국식 순수 주주경영회사가 탄생할 수 있을까.’

현대측은 20일 건설자구안을 발표하면서 “현대전자를 내년 상반기까지 계열에서 분리해 경영권은 계속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측 발표후 시장에서는 그러나 “주식을 대부분 팔겠다면서 어떻게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국적 현실에서 과연 미국식 주주경영회사 운영이 가능한가”를 묻는 것이다. 재계는 현대전자의 변신선언을 ‘한국 자본주의의 새로운 실험’으로 보고 정착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대주주가 없는 회사〓현대전자는 내년 6월 이후에는 뚜렷한 대주주가 없는 회사가 된다. 현재 현대측에서 갖고 있는 전자지분은 총 19.13%(정몽헌회장 1.7%, 상선 9.25%, 중공업 7.01%, 엘리베이터 1.17%). 나머지는 외국의 기관이나 소액투자자들이 투자목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현대전자의 외국인 지분은 약 40%.

현대는 전자를 계열에서 분리하려면 19.13% 지분을 3%이하로 낮춰야 한다. 현대는 16.13%의 지분을 경영권 행사목적이 없는 외국의 투자전문 컨소시엄에 매각할 계획.

이렇게 되면 현대전자는 뚜렷한 대주주가 없이 이사회가 최고경영자(CEO)와 임원진을 선임하고 이들의 경영활동을 감시하는 미국식 주주경영회사로 변신하게 된다.

이론대로라면 현대전자의 새 CEO 및 경영진은 ‘한국식 오너’가 없기 때문에 주주 이익에 전념할 수밖에 없다. 이사회는 또 실적이 나쁘면 언제든지 CEO를 갈아치울 수 있다.

현대전자의 윤정세 상무는 “한국의 대기업은 오너가 직접 경영을 하거나 그룹 회장으로 깊이 간여하고 있어 진정한 의미의 이사회 중심 경영은 불가능했다”며 “현대전자가 계열에서 분리된다면 미국 대기업의 일반적 형태인 주주 경영회사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영권을 꼭 유지해야 하나〓재계 일부에서는 “전자를 계열에서 분리하려면 지분매각(약 6000억원)보다는 제3자에게 일괄 매각,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받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의견이 많다. 현대전자의 경영을 원하는 외국회사에 팔면 1조원이상을 받고 팔 수 있다는 게 업계의 평가.

현대측은 이에 대해 “반도체 시황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현대전자의 경영을 원하는 매수자를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외국회사들은 대부분 지분참여만을 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현대전자의 주식을 보유, 주가차익을 남기려는 외국인 컨소시엄에 팔 수밖에 없다는 것. 미국의 모 투자기관은 이미 이런 목적으로 현대전자의 지분을 13%정도 보유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단순한 지분매각도 쉽지 않다”며 “당분간 현대전자의 움직임을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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