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미완의 자구안'…현금확보가 변수

  • 입력 2000년 11월 20일 19시 45분


현대건설의 최종 자구안을 살펴보면 이미 알려진 내용이 종합된 정도의 수준이다. 오히려 계동사옥 매각과 서산농장 매각이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미완의 자구안’ 성격이 짙다.

시장에서는 새로운 내용이 없는 자구안에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가 현대건설을 살리기 위해 나선만큼 우선 급한 불은 꺼질 것으로 보고 과연 현대건설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주류.

재계에서는 현대그룹 재편안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건설 자구안 분석〓1조3000억원에 이르는 자구안은 △서산농장 매각 △정몽구(鄭夢九) 회장 계열사의 도움 △정주영(鄭周永) 정몽헌(鄭夢憲) 부자의 사재출자 등이 큰 축을 이루고 있다.

이날 자구안에서는 우선 정몽헌 회장이 ‘건설을 포기하지 않고 사재를 출자해서라도 살리겠다’는 의지를 충분히 보인 것으로 평가된다. 정주영 전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은 각 2700억원과 400억원을 출자, 현대건설의 회생에 자신들의 돈 3100억원을 새로 넣는다.

재계순위

그 룹계열사수(개)자산총액(조원)
삼성(1위)4567.4
LG(2위)4347.6
SK(3위)3940.1
현대자동차

(4위)

1134.0
현대(5위)1725.4
현대중공업(9위)311.8

또 정몽헌 회장은 현대건설 자구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정부측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었지만 정몽구 회장과 화해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자구안에는 아직도 돌발변수가 많다. 우선 토지공사가 성공적으로 서산농장을 일반에 매각, 현대측이 예상한 대로 6000억원 이상의 현찰을 확보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현대건설은 우선 선급금 2100억원을 토지공사로부터 받았지만 매각이 순조롭지 않을 경우 자구안 가운데 3900억원이 흔들리게 된다.

1700억원에 이르는 계동사옥 매각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이 자구안 발표 직전까지도 매입을 거부, 일단 ‘계열사에 매각한다’고 발표했지만 매각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그룹의 핵분열〓그룹 재편안의 핵심은 전자계열의 분리(2001년 말)와 정몽준(鄭夢準)고문이 이끄는 중공업계열의 내년 상반기 내 독립.

현대그룹은 올 9월 자동차가 분리되면서 핵분열이 가속화돼 우선 AIG와 협상이 끝나면 현대는 금융부분에서 철수하게 된다. 다음 중공업계열이 현대와 결별하고 전자마저 계열에서 분리된다. 결국 그룹의 5개 주력부문 중 건설부문(현대건설 상선 등 17개사)만 남아 99년 재계서열 1위에서 내년 말에는 재계 서열 5위로 주저앉게 된다.

건설부문도 회사 수는 17개나 되지만 건설 상선 택배 아산 등이 주류를 이루어 그룹의 주력업종이 ‘대북사업’ 외에는 뚜렷하지 않고 미래성장사업이 없는 약점을 안고 있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현대측이 전자를 계열에서 분리는 하지만 경영권은 유지하겠다는 방침. 전자가 계열에서 분리되려면 정몽헌 회장과 계열사가 보유한 전자주식을 3% 이하로 낮춰야 한다. 이렇게 되면 현대전자는 뚜렷한 대주주가 없이 전문경영인이 이끄는 회사가 된다.

이번 현대건설의 자금난에서 가장 이득을 본 회사는 현대중공업이다. 중공업은 회사에 부담이 될 만한 반대급부를 현대측에 주지는 않은 채 ‘내년 말 계열분리’라는 ‘전리품’을 얻었다. 중공업부분은 선박건조부문에서 세계 제1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어 현대와 고리만 끊고 재계서열 9위의 그룹으로 거듭날 것으로 보인다.

<이병기·하임숙·이나연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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