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산안 무엇이 문제인가]분야별 점검

  • 입력 2000년 9월 5일 18시 51분


《내년도 예산안을 마련하는 작업이 초기 단계부터 진통을 겪고 있다. 국민의 부담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야당은 물론이고 집권 여당인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반대 의견을 제기하는 의원들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일반 서민과 중산층, 경제계의 반발이 심한 편이다. 앞으로 국회동의를 받는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낮은 곳'엔 투자 소홀▼

특히 정부는 4일 에너지 세율 및 연금에 대한 과세 체계를 대폭 손질한 세제 개편안을 내놓았다. 이 방법으로 세수를 늘려 2003년에 균형 재정을 맞추겠다는 것.

재정적자를 줄이고 나라 살림살이를 정상적으로 꾸려가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증세는 불가피한 면이 있다. 그러나 정부는 액화석유가스(LPG) 경유 등 서민들이 많이 쓰는 에너지에 대한 세율을 크게 높여 5조1000억원이나 세수를 확보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심화되는 빈부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소득 재분배나 서민 보호에 대한 대책은 소홀했다.

기획예산처는 기초생활보장법 시행에 따라 서민층에 대한 지원이 늘어났다고 말하고 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도 1회성이며 근본적인 지원 대책은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예산처는 외환위기 이후 크게 늘어났던 공공근로사업 등에 대한 세출 소요를 1조5000억원 삭감했다. 자활사업 지원이나 기초생활보장, 사회취약계층 지원 등도 대부분 예년과 같은 수준이나 약간의 증액이 있었을 뿐이다.

▼국민에게만 부담 전가▼

정부는 공무원 처우개선이나 정부의 정책 실패에 상당한 책임이 있는 금융구조조정 지원에는 3조∼3조50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편성했다. 물론 크게 모자라는 액수지만 정부의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은 결국 국민이 져야 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보건복지부 예산 중에 기업 의료보험 지원 명목으로 1조8000억원이 편성됐지만 이 역시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정부가 병의원에 대한 보험료를 이 정도밖에 지원하지 않는다면 결국 40∼50%에 달하는 대폭적인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고 결국 이는 국민 부담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교육 관련 예산 중에서 공교육 내실화를 위해 예산도 별로 반영되지 않았다. 특히 최근 위기에 몰려있는 벤처 업계에 대한 투자도 올해 2000억원에서 내년 1000억원으로 절반을 삭감했다. 예산처는 민간 창투사 등이 활성화되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벤처업계에 대한 직접 투자는 줄이고 대신 정보통신 인프라쪽 투자를 늘렸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민간 창투사에서 돈을 빌려쓸 수 있는 벤처기업이 얼마나 될지를 신중하게 고려해 결정한 예산인지 의문스럽다.

▼SOC투자 왜 줄이나▼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분야는 SOC. 정부는 2004년 완공을 목표로 내년에 착공되는 호남선 전철화 사업에 655억원을 신규 투자할 뿐 서해안고속도로와 대전∼진주간 고속도로 등에도 올해보다 대폭 줄어든 예산을 배정했다.

고려대 경영학과 이만우 교수는 “건설 경기는 단군 이래 최악이라고 할 만큼 사정이 급박하다”며 “SOC투자를 줄이면 건설 경기가 위축되는 것은 물론 실업자 증가, 경기 전반의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SOC투자는 생산성 지출로서 나중에 생산성이 발휘되니까 당장 적자가 나더라도 투자를 대폭 늘려야 하는 분야”라고 덧붙였다.

특히 이번 세제 개편으로 대부분 공업용으로 사용되는 벙커C유와 경유 등에 대한 세율이 대폭 인상돼 산업 경기마저 둔화되고 있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지자체 교부금 물쓰듯▼

한편 이 같은 정부의 긴축 예산 편성에도 지자체를 지원하는 지방재정교부금은 2조원이 늘어난 10조3000억원이, 교육재정교부금도 3조4000억원이 늘어난 13조원이 책정됐다. 물론 민선 단체장이 등장하면서 지방자치단체의 목소리가 높아져 지난해 지방교부세법 등 지자체에 대한 정부 보조금을 늘리는 법이 제정됐기 때문에 예산처 입장에서는 ‘법’에 따른 집행이라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중앙정부 권한의 지방정부 이양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지자체에 대한 지원만 크게 늘어난다면 이는 결국 국민의 세금이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지 않다는 증거라는 지적이 많다.

<이훈기자>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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