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채권시가평가제 "비상"…투신사 고위험채권 기피

  • 입력 2000년 6월 8일 19시 43분


다음달부터 채권을 시세대로 평가하게 되면 신용도가 낮은 중견기업들은 회사채발행이 지금보다 훨씬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투신사 채권 펀드매니저들은 자금의 단기부동화 현상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예정대로 7월1일부터 채권시가(時價)평가제가 전면 실시될 경우 투자위험이 높은 중견기업 회사채의 편입이 곤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일단 ‘짧게’ 운용한다〓시중자금이 떠돌아다니면서 투신사에는 자금이 들어오지 않고 있어 채권운용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형편. 그나마 유입되는 자금도 1∼3개월짜리의 초단기성이 대부분이다. 채권 펀드매니저들은 주로 이 돈들을 만기 6개월 이하의 단기물로만 운용하고 있다.

이윤규(李潤珪)한국투신채권운용부장은 “채권시가평가가 되면 심리적인 충격이 적잖은데다 수익률 관리를 위해서는 당분간 자금을 단기로 굴리고 신용도가 낮은 채권을 기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예전에는 고객이 맡긴 신탁재산에서 부도난 채권이 발생하면 회사가 떠안아 미매각수익증권 형태로 대신 사줬지만 채권시가평가가 되면 바로 해당펀드에서 손실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자금운용이 극히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

▽불안심리로 고위험 채권은 편입자제〓펀드운용을 회사채처럼 1년 이상인 장기물로 가져갈 경우 채권매입 후 금리변동을 그대로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초우량물이 아니고는 투자대상에서 배제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투자신탁회사 고객 대부분이 유사한 보수적인 투자성향을 갖고 있어 투신사로선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초기부터 고위험 고수익 자산을 편입하기가 쉽지 않을 전망.

권경업(權京業)대한투신 채권운용팀장은 “채권투자를 저축쯤으로 여기는 투자자들이 대부분이라 공사채펀드에 넣어놓은 돈이 금리변동이나 부도로 손해를 봤다면 이를 투자자들에게 납득시키기가 무척 어렵다”며 “시행초기에는 수익률이 낮더라도 안정적인 운용에 주력해야 하기 때문에 신용등급이 BBB이하인 채권은 포트폴리오 편입에서 외면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신탁재산 공개방침도 보수적운용에 한 몫〓여기다 채권시가평가 실시를 앞두고 20일까지 투신사들은 신탁재산에 편입된 자산을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투자자들이 가입한 펀드에 어떤 자산이 얼마나 들어가 있는지를 신탁재산 명세서를 통해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게 된 것. 투신사들은 회사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부실채권을 편입하기를 꺼릴 것으로 보여 조금이라도 흠집이 나거나 신용이 염려되는 기업은 기피할 가능성이 높다.

▽중견기업은 힘들어져〓이처럼 채권시가평가로 인해 당장 손해를 보게 될 기업은 신용도가 다소 떨어지는 중견기업들. 이들 회사들은 지금도 회사채 발행이 안되는데다 앞으로는 더욱 어려워져 시설투자 자금 조달 계획은 엄두도 못내고 있다. 중견기업의 자금줄이 트이기 위해서는 증시가 호전돼 유상증자를 통한 자기자본 확충이 수월하게 되거나 은행에 저금리 기조가 정착되는 대신 투신사에는 돈이 많이 들어와야 한다는 것. 투신협회 관계자는 “시가평가제도가 제대로 정착되려면 수익률과 투자위험이 서로 다른 다양한 상품들이 출시돼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영해기자>money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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