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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월 30일 19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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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경제전문가를 중심으로 제기되는 이 같은 주장은 최근 원화가치 상승을 우려, ‘정부가 환율방어에 나서야 한다’는 무역업계의 요구와 배치되는 것으로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환율 관리는 위험한 발상〓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최근 “IMF 구제금융을 계기로 외국환 관리정책을 포기한 만큼 환율을 시장 움직임에 맡기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H증권의 최고경영자도 사석에서 “무역업계의 어려움은 이해하지만 금리 물가 등 거시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목표가 수두룩하다”며 “다른 부문에 미치는 충격을 무시하고 무조건 환율(하락)방어에 나서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좌원장 등의 문제 제기는 우리경제가 외환위기 이후 ‘완전한’ 변동환율제로 이행했다는 상황변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정책당국이 염두에 둬야 할 ‘가격변수’가 금리 물가 환율 등으로 늘어난 반면 정책수단은 사실상 통화정책에 국한돼 있기 때문에 환율의 높고 낮음을 떠나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
환율하락을 용인할 경우 인플레 압력을 해소할 수 있다는 부수효과도 거론된다.
▽환율관리의 어려움〓환율을 ‘만지는’ 한국은행 담당자들은 요즘 무역업계에서 환율 비명이 터져 나올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경제적 파장을 떠나 행정 입법부의 ‘높은’ 분들이 “한은은 뭐 하느냐”며 따지듯 압박하기 때문.
과거 정부와 한은은 목표 환율을 유도하기 위해 환율 변동폭을 설정하고 민간부문의 외화차입과 상장사의 외국지분 투자 등을 엄격히 제한했다. 그러나 IMF이후 외자유치를 장려하기 위해 이 제한들은 대부분 철폐됐다.
지금도 대기업 및 금융기관의 외화 거래시기를 조절하는 등 ‘창구지도’에 나서고 있지만 외환전문가들은 “지금은 시장에 개입해 끝까지 특정 환율을 고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입을 모은다.
▽90년대 환율관리 실패의 교훈〓93∼97년 정부는 원화 환율을 인위적으로 낮게 묶어 놓았고 결국 경상수지가 악화됐다. 전문가들은 당시 정부의 목표환율에 문제가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현재의 ‘적정환율’을 자신있게 밝히지는 못한다. 환율결정에는 무역상대국의 교역비중, 물가, 심리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
따라서 이 같은 어려움 때문에 적정환율 유도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환율을 관리하기 보다 시장에 맡겨두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
▼"적정환율은 1090원" ▼
무역수지 흑자폭이 둔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화의 가치가 아직 ‘무역수지 적자기조’를 염려할 정도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왔다.
LG경제연구원이 30일 작성한 ‘적정환율의 추정과 시사점’이란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엔화환율이 달러당 104.7엔 수준을 유지할 경우’ 원화의 달러에 대한 적정 환율은 1090원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현재 달러당 1120원대에서 횡보중인 원화 환율이 더 하락할 여지가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연구원의 ‘적정’환율 분석은 ‘경상수지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전제로 작성됐다. 93∼97년 5년간 원화가 지나치게 고평가(달러당 827원)돼 경상수지 적자를 불렀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당시 경상수지를 균형으로 만드는 환율 수준을 구했다. 이 기간 동안 경상수지 누적적자 426억달러를 0으로 만드는 적정환율 수준은 902원.
보고서는 98년 이후 경제성장률이 6%대에서 안정된다고 가정하고 여기에 엔화 가치가 달러당 104.7엔대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추가해 현재의 적정환율을 구했다.
경제성장률이 낮아질수록 수입 수요가 줄고 엔화 가치 등락은 우리 상품의 수출시장 경쟁력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
이 같은 과정을 거쳐 도출된 적정환율은 1090원. 29일 환율이 1120원이기 때문에 아직도 환율 때문에 적자를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연구원은 그러나 금년 들어 약세로 돌아선 엔화가 추가로 더 떨어져 달러당 110엔 수준에 도달할 경우 현재의 원화가치는 적정수준이 된다고 지적했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