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도 벤처行 러시…창업-경영인 변신 늘어

  • 입력 2000년 1월 23일 19시 54분


네트워크 장비업체로 요즘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는 한아시스템의 박영환(朴榮煥·50)회장은 요즘 ‘제2의 인생’을 사는 기분이다. 박회장은 93∼97년 대통령 비서실 공보비서관을 지낸 전직 공무원 출신. 신정부 들어 청와대를 떠난 후 잠시 한국소비자보호원에 몸을 담았다가 지난해초 벤처기업인 한아시스템에 합류했다.

박회장은 “일의 강도는 공직에 있을 때와 비슷하지만 이미 세팅된 조직이 아니라 다이내믹하고 새로운 분야에서 사회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으로 살고 있다”고 소개했다.

공무원과 벤처기업인.

한쪽은 ‘철밥통’ 소리를 들을 정도로 안정된 직업. 다른 한쪽은 모험과 도전 정신으로 무장해야 하는 직업.

언뜻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최근 관복을 벗고 벤처기업으로 자리를 옮기는 공무원이 늘고 있다. 퇴직 후 안정된 대기업으로 옮기던 예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래픽&디자인의 허용상(許容祥·41)사장은 청와대 출신으로 직접 창업한 경우. 지난 정권에서 의전비서관과 영상비서관을 지낸 허사장은 지난해 9월 자동차 항공기 등 제품의 디자인을 3차원 입체 공간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처리해 주는 그래픽&디자인을 설립, 벤처기업가로 변신했다.

허사장은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나도 기업 활동이 이렇게 어려운 데 일반 중소기업인들이 경영 활동에서 겪을 어려움이 어떨지 쉽게 짐작이 된다”고 혀를 내둘렀다. 허사장은 최근 위성방송 관련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사이버에이지네트워크’를 설립해 인터넷 사업에 뛰어들 계획을 갖고 있다.

경제 관리로 근무했던 공무원들의 ‘벤처행’도 적지 않다.

구본룡(具本龍·50) 전 산업자원부 산업기술국장은 인터넷광고업체 온앤오프를 설립, 회장을 맡았다. 74년 행시16회로 관직에 들어온 후 25년만에 기업체의 최고경영자(CEO)로 변신한 것. 온앤오프는 온라인 광고와 오프라인 광고를 중계하며 첨단 인터넷 광고를 대행할 계획. 지난해 10월 관복을 벗은 이홍규(李弘圭·48) 전 산자부 이사관도 1일부터 의료기기 벤처기업 메디슨의 부사장으로 공식 근무를 시작했다. 중소기업청 중소기업정책국장으로 중소기업 관련 정책을 직접 입안했던 그가 실전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관심을 끈다. 업계 관계자들은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경제정책이 대기업 위주로 진행돼 벤처기업 경영자들은 정책 과정에서 소외된다는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정부에서 근무했던 전직 관료들의 경험은 정부와 벤처기업간의 갭을 메꿔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홍석민기자>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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