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고비 함께넘자 ②]금융개혁 꼭 필요

  • 입력 1998년 6월 8일 19시 43분


국제통화기금(IMF)관리 체제로 접어든지 7개월째이지만 아직까지 금융과 기업부문에서 강도높은 구조조정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또 정치권과 정부는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사태를 우려해 ‘브레이크’를 함께 밟고 있다. 현대자동차 등 대규모 고용조정을 앞둔 기업들에 “정리해고를 하지말라”고 압력을 가할 정도다.

제2의 환란(換亂)에 대한 걱정이 풀리지 않는 것도 이처럼 구조조정이 답보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크게 기인한다.

▼과감한 금융개혁부터 해야〓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은행이 부실기업 정리를 주도해야하지만 부실은행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부실기업을 정리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은행들은 지난달 부실대기업 명단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대다수의 주거래기업들을 제외했다.

더 나아가 부채규모가 큰 재벌에 대해서는 협조융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은행들은 IMF사태 이후 해태 동아 한화 고합 등 부실 재벌을 위해 모두 1조9천억원의 협조융자를 제공했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우선 은행이 살아남기 위해 협조융자를 제공하고 있다”며 “일부 재벌들은 ‘우리를 돕지 않으면 당신네 은행도 망한다’는 위협성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기업보다는 사업구조가 간단하고 구조조정이 손쉬운 금융부문부터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한다. 정부는 개편된 금융기관이 기업의 구조조정을 체계적으로 벌일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조하현·曺夏鉉연세대교수)

정부는 금융기관 부실채권정리기금 등 구조조정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50조원의 채권을 발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자금이 턱없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또다른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채권을 발행하는 것은 자금시장에서 민간부문에 유입될 자금을 정부가 끌어다 쓰는 셈이다. 이는 민간부문의 자금사정을 더 악화시켜 이자율만 상승시킬 뿐 신규자금 조성효과는 거의 없다.”(홍기택·洪起澤중앙대교수)

따라서 채권 의존도를 대폭 줄이고 재정과 공기업 매각대금으로 부실채권을 상당부분 소화해야 한다는 것.

▼정책 일관성이 절실하다〓“한국 정부는 수차례에 걸쳐 부실기업에 대한 협조융자를 중단하겠다고 밝혔지만 부도 직전의 기업에 대한 협조융자를 허용했다. 따라서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정부의 구조조정 의지를 의심하고 주식투자자금을 빼내가고 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는 최근 한국의 주가폭락원인을 이렇게 분석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거평그룹 계열사인 새한종금을 인수키로 결정한 것도 정부의 개혁의지를 의심케 하는 사례였다.

“정부가 거덜난 재벌계열 금융기관을 인수키로 한 것은 정부에 대한 의존심만 높여 심각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야기할 수 있다.”(이언오·李彦五 삼성경제연구소 이사)

정부는 또 설득력 있는 구조조정의 마스터 플랜을 제시하지 못해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을 지나치게 증폭시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있는 이유는 정부가 구조조정의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했고 종합적인 밑그림이 없는 상황에서 정책이 부처별 사안별로 발표돼 정책간의 충돌이 야기된 데 있다.”(이진순·李鎭淳 KDI원장)

▼알짜라도 팔아야〓두산그룹은 96년 남들보다 먼저 경영위기에 직면하자 구조조정에도 먼저 착수했다. 맥주와 관련이 없는 코카콜라 3M 네슬레 등 알짜배기 합작사를 모두 매각했다. ‘알짜기업을 팔고 나면 무엇으로 먹고 사느냐’는 재계일각의 주장에 정면으로 맞선 것이다. 두산은 그 덕분에 IMF충격을 비교적 잘 넘기고 있다.

정부가 기업의 구조조정에 일일이 관여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지만 알짜기업은 놔둔 채 부실기업만 매각하려는 대다수 기업의 구조조정 자세는 더 큰 문제라고 일부 전문가는 꼬집는다.

“비주력으로 분류된 계열사는 비록 알짜라 하더라도 과감히 매각해 주력기업을 살려야 한다. 알짜기업을 내놓지 않으면 전멸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외국기업들은 이익을 낼 수 없는 부실기업을 결코 인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이재형·李在亨앤더슨컨설팅사장)

삼성경제연구소의 이이사는 “구조조정은 지금 당장을 넘기는 것보다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한다”며 “국내기업간의 전략적 제휴나 합병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떨이세일’하듯이 기업이나 자산을 외국인에게 헐값에 넘기지 말고 다양한 매각기법을 동원, 제값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구조조정을 통해 10억달러의 외자를 조달한 현대전자에 대해 ‘모델케이스’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는 매각 합작시설양도 종업원지주제등 다양한 기법을 도입,부작용을 최소화했기 때문.

특히 이 회사의 구조조정 방법중 일부 사업분야를 떼어내 종업원들이 직접투자할 수 있게 만들어 벤처기업 형식으로 독립시킨 것은 회사의 구조조정과 실업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희성·이용재기자〉lee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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