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은행「도태기업」선정 불공정 우려

  • 입력 1998년 5월 12일 19시 24분


이른바 금융기관이 제시할 ‘부실기업 살생부(殺生簿)’의 작성기준과 파장을 놓고 재계가 크게 우려하고 있다.

부실기업 도태에 대한 재계의 입장은 원론적으론 찬성. 그러나 작성기준이 은행에 따라 다르고 벌써부터 “A그룹의 B사, C그룹의 D사가 포함되었다”는 식의 악의적인 소문까지 나도는 등 파문이 커지고 있다. 대기업들은 특히 지난해 은행권이 주도했던 부도방지협약과 협조융자 등이 은행 이기주의에 휘말려 결국 실패한 점을 들며 추진과정에 상당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재벌간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한다〓자금여력이 있는 5대그룹이 제시하는 부실 계열사 자구계획에 대해서는 은행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평점을 매기게 마련이다. H종금 관계자는 “부실종금사로 분류됐다가 계열사들이 5천4백억원을 증자해 기사회생한 LG종금이 중하위그룹 계열사였다면 쉽게 정상화되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한다. 은행들의 부실기업 판정에 현실적으로 그룹 전체의 자구계획이 고려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

이렇게 되면 대그룹 계열 부실기업과 은행이 협조융자를 해준 부실기업은 오히려 살아남을 가능성은 커지는 반면 부실정도가 그보다 덜한 중하위그룹 계열사들은 오히려 도태 리스트에 오르는 차별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성장산업’의 싹이 도태된다〓자산건전성 등의 자료를 토대로 살생부를 만들다 보면 장기적 성장성을 고려할 여지가 줄어든다. L그룹 고위관계자는 “사업평가 능력이 떨어지는 국내 은행들이 전략적인 관점에서 키워온 기업들을 당장의 재무제표만으로 도태시키려 들면 차세대 성장산업의 기반이 붕괴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부실기준을 통일시켜야〓H은행 관계자는 “업종별 기업별 사정이 다른 데다 은행의 이익에 차이가 나기 때문에 통일된 부실기준을 정해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소문’이 기업을 망가뜨린다〓D그룹 관계자는 부실기업 선별과정에서 유출돼 증시 등에 떠다닐 ‘부실기업 리스트’의 악영향을 우려한다. 이미 경쟁기업을 무너뜨리기 위한 흑색선전이 증시 등에 파다한 상황. 특히 주거래은행에 기업정보가 편중되는 ‘정보 차별화’현상이 심화되면 제2, 제3금융권은 ‘부실소문’만 듣고도 무차별적인 여신회수를 강행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다.

〈박래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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