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단기 외화 부채에 대한 낙관론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여전히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양상이다.
현재 한국경제의 발등에 떨어진 불은 단기 외화부채. 연말까지 상환해야 할 단기외채의 규모를 두고 정부와 국내외 금융시장이 보는 시각차가 크다.
정부가 올해말까지 갚아야 할 것으로 비공식 집계한 금액은 1백63억달러. 공식 발표한 단기외채 규모는 1백억∼1백40억달러 수준이다.
그러나 금융시장에서는 2백억달러 수준, 심지어 3백억달러가 넘는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얼마를 갚아야 하나〓정부가 연말까지 갚아야 할 단기외채를 1백억∼1백40억달러라고 구간을 두어 밝힌 것은 올해안에 만기가 돌아오는 외채중 기한이 연장(롤 오버·Roll Over)되는 규모에 따라 그 규모가 바뀌기 때문.
문제는 미국과 유럽계 금융기관들이 연말결산 때문에 거의 롤오버를 하지 않고 있다는 점. 일본계 금융기관들도 최근 자기자본 등을 확충하느라 「제 코가 석자」다.
지난 11일 하루동안 일본계 은행들이 현지 진출 한국계 은행에 대해 「크레디트 라인을 축소하겠다(연장하지 않겠다)」고 통보한 금액만도 10억달러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밝힌 단기외채 규모에는 △국내기업의 해외현지법인이 기채한 금액 △조기상환 압력을 받고 있는 은행과 종금사의 장기차입금 △증권사가 조성한 외국인 수익증권 환급금 등이 빠져 있어 이를 감안하면 실제로 갚아야 할 외채는 훨씬 늘어난다는 게 금융계의 분석.
재정경제원 관계자는 『단기외채중 절반 정도가 롤오버될 경우 1백억달러 정도만 상환하면 될 것 같다』고 말했지만 시장에서는 이 말을 뒤집어 롤오버가 안되면 2백억달러를 갚아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얼마나 있나〓재경원이 밝힌 가용 외환보유고는 지난 10일 현재 1백억달러 수준. 연내에 들어올 돈은 국제통화기금(IMF)에서 2차 지원분 35억달러, 아시아개발은행(ADB)에서 20억달러, 세계은행(IBRD)에서 20억달러(늘어날 수 있음) 등 75억달러. 합치면 1백75억달러 수준이다.
정부는 이 정도면 단기외채를 갚고도 남는다고 밝히지만 단기외채 집계에서 빠진 부분을 감안하면 부족분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게 금융계의 분석. 즉 외화부도가 발생하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또 정부의 집계가 정확하다 치더라도 1백75억달러중 1백63억달러를 갚고 나면 외환보유고는 12억달러에 불과하게 된다. 한국이 소비하는 보름치 원유값도 안되는 수준이다.
▼대책은 있나〓재경원은 IBRD가 연내에 지원할 1차 자금을 현재 논의중인 20억달러에서 40억달러 수준으로 대폭 높여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ADB만 해도 총 40억달러중 절반인 20억달러를 1차 지원했는데 IBRD는 1백억달러중 20억달러만 1차 지원하는 것은 너무 적다는 게 재경원의 설득 논리.
그러나 15일 출국한 조셉 스티글리츠 IBRD수석부총재는 우리정부에 『대통령당선자와 그 팀이 앞으로 IMF이행합의는 물론이고 구조조정 추진 등에서 어느정도 고통을 감내할 것인지를 국제사회에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외국환평형기금이 발행하는 1백억달러 규모의 단기국채 역시 잘 해야 내년초에 자금유입이 시작될 것으로 보여 연말 위기를 해소하는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는 14일 미국에 김만제(金滿堤) 포철회장을 파견한 데 이어 일본 등 우방국 정부 및 금융기관을 설득, 상환연장과 신규대출을 받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뾰족한 해법은 없는 상황이다
〈이용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