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 없는 기아호(號)는 어디로 흘러 갈 것인가.기아그룹을 17년 동안 이끌어온 김선홍(金善弘)회장이 29일 오전 기자회견을 갖고 전격 사퇴했다. 그동안 여론을 등에 업고 정부에 맞섰던 김회장은 최근 여론이 등을 돌림에 따라 사퇴를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사퇴배경〓기아의 일부 임직원은 물론 그동안 최대 지지세력이던 노조까지 최근 들어 김회장 퇴진에 동조하는 지경에 처했다. 또 기아자판과 아시아자동차 기아정기 가아중공업 기아모텍 등 5개 계열사 노조위원장들이 29일 김회장 퇴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지려고 했던 것도 압력이 됐다.
기아사태로 존망의 기로에 선 협력사들의 동향도 김회장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정부와 채권단은 기아의 법정관리를 전제로 협력사에 대한 자금지원 입장을 밝혀 협력사들의 상황은 절박했다.
일부 협력사 대표들은 지난 22일 △법정관리 수용 △김회장 퇴진 △노조파업중단 등을 기아측에 요구하기도 했다.
더구나 최근에는 검찰이 김회장에 대한 내사착수 사실까지 밝힌 점도 김회장을 심하게 압박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함께 최근 주가가 폭락하면서 「김회장이 국민경제를 볼모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여론이 제기된 점도 부담감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회장은 최근 그룹 안팎에서 거센 퇴진압력을 받았다.
▼후계구도〓김회장을 이을 내부인물로 기아자동차 박제혁(朴齊赫)사장과 기아자동차판매 유영걸(柳永杰)사장 등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박사장은 김회장의 분신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김회장을 지근거리에서 평생 보좌해온 인물. 박사장은 노동조합을 장악하지 못한 점에서 불리하다.
유사장은 노조의 지지를 얻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아자동차의 자금줄을 장악하고 있는 점에서는 유리하지만 후계구도 구축에 영향을 미칠 김회장의 지원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이들 중 누가 경영권을 장악하더라도 사내 장악력과 대외 정치력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기아는 정부와 채권단에 의해 공기업화한 뒤 제삼자인수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란 전망.
▼정상화 가능성〓경쟁이 치열한 자동차산업의 특성상 효율성이 떨어지는 공기업형태의 경영은 오래 못 갈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전세계적으로 공기업형태로 회생한 자동차업체는 독일의 폴크스바겐과 프랑스의 르노 등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따라서 기아는 결국 공기업화를 거친 뒤 재벌기업에 매각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그룹은 기아 인수를 추진하지 않는다고 기회있을 때마다 밝히고 있지만 역시 삼성이 가장 유력한 후보. 삼성은 기아인수를 통해 경쟁력을 조기에 확보하고 채권금융단은 대출금을 조기에 회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양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관측통들은 삼성의 인수 가능성이 가장높은것으로보고 있다.
▼계열사의 앞날〓기아그룹 회생의 관건인 기아자동차는 정부의 발표대로 일단 법정관리를 거쳐 공기업으로 전환돼 한동안 자력회생의 길을 걷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와 채권단은 김회장의 퇴진을 계기로 기아자동차에 대한 자금지원 등 각종 지원을 재개하고 산업은행의 대출금을 출자로 전환, 기아자동차의 경영정상화를 도모하겠다는 방침이다.
노조가 파업을 철회하면 기아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기아정기 기아중공업 등 기아 계열사와 협력업체들도 조만간 조업정상화가 가능하게 된다.
기아자동차와 함께 법정관리가 신청된 아시아자동차는 법정관리를 거쳐 머지않아 제삼자 매각이라는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기아측은 아시아자동차를 기아자동차에 흡수합병해야 한다는 입장을 여전히 갖고 있지만 아시아자동차까지 안고서 기아그룹의 경영정상화를 이루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매각가능성이 훨씬 높은 편이다.
기산 등 나머지 계열사는 김회장 퇴진과 관계없이 당초 예정된 절차를 밟아 매각 통폐합 지분정리 등의 형태로 정리될 전망이다.
〈이희성·이 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