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원이 20일 부랴부랴 한국은행 특별융자를 포함한 추가 자금지원책을 밝힌 것은 정책실패를 인정하고 적극적인 시장개입을 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우선 정부의 문제인식이 바뀌고 있는 점이 감지된다. 재경원은 은행 및 종금사에 대한 사실상 무제한의 자금지원을 약속하는 특단의 경제위기대책을 내놓았다. 기업의 부도사태와 금융권의 위기가 단순한 구조조정문제가 아니라고 느끼기 시작한 듯하다. 최근 며칠 사이에 쌍방울 태일정밀 뉴코아 등 대기업이 잇따라 부도위기에 내몰린데다 주가마저 폭락을 거듭하자 재경원은 20일 하루종일 대책마련에 부산한 모습을 보였다.
재경원은 그동안 특융 등 직접지원이 부작용이 많다는 이유를 들어 소극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그런데도 이날 「기업 살리기」에 필요한 「실탄(돈)」을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은 정책기조가 급선회한 것이라는 해석을 낳고 있다.
경제계 일각에선 강경식(姜慶植)부총리의 「시장주의」가 현실앞에 무력화되면서 정책추진력도 현저히 떨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윤증현(尹增鉉)재경원 금융정책실장은 이날 『은행 외에 종금사도 기업에 대한 자금회수를 자제하는 과정에서 자금이 필요하다면 한은특융 등 자금지원책을 고려하겠다』고 말해 현재의 금융위기가 일부 시중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금융계의 위기임을 시인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같은 금융대책에 대해 지난 8월25일에 내놓았던 금융시장 종합대책처럼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란 시각이 많다.
특히 이번에도 기업 및 금융위기의 핵심사안인 기아문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기아사태로 촉발된 최근의 경제위기는 위기심화와 대책발표를 거듭하면서 문제의 원점으로 회귀하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는 양상이다.
〈임규진·이용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