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생산을 바탕으로 한 한국의 수출드라이브 정책이 세계시장에서 먹혔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습니다. 남들이 못 만드는 창의적인 제품으로 승부할 때가 온 거죠』
미래학의 원조로 인정받는 미국의 앨빈 토플러는 10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97 코리아서밋(경제정상회의)에 참석,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지적했다.
그는 규모확대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해온 한국경제의 성장방식이 바뀔 때가 왔음을 강조했다.
그의 지적은 「눈으로 보이는」 자산을 늘리는 것이 경제활동의 목표가 됐던 「제2의 물결」이 「지식자본」을 중시하는 「제3의 물결」로 넘어가고 있다는 평소 지론을 한국상황에 적용한 것.
토플러는 새로운 경제운용의 틀 속에서 한국이 가장 먼저 달성해야 할 목표는 「혁신」이라며 기업구조의 획일성과 노동시장 등에서의 유연성 부족이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토플러는 지식사업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나라와 기업으로 미국과 마이크로소프트사를 꼽았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주가와 신용도는 세계 최대의 자동차회사들보다 훨씬 높으며 이 추세에 따라 미국 5백대 기업 중 42%가 「지식담당 임원(CKO)」을 두고 있다는 설명이다.
토플러는 『한국 수출품의 70% 정도가 대량생산 방식에서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고부가가치형 기술집약적 산업의 육성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토플러는 「선진경제의 지적재산권 보호 움직임이 지식자본의 육성을 가로막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보호가 없으면 지적자본을 늘리려는 의욕도 사라진다』면서도 『인터넷 등의 등장으로 모든 지식자본을 통제하는 일은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탓인지 토플러는 남북한 대치상황을 과거 동서독의 분단상황보다 더 심각하게 인식하는 듯 했다. 그는 『구서독은 제2의 물결이 상당히 진전된 상황에서 통일을 맞았다』며 『1차산업에 머무르고 있는 북한경제와의 통합은 엄청난 비용을 필요로 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한편 이날 행사의 최대 후원사인 페레그린 그룹의 필립 토스회장은 한국이 새로운 경제체제로 넘어가는 데 있어 은행부문의 개혁에 우선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스회장은 『한국경제는 지난 30여년간의 성장으로 정부가 관리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섰다』고 진단하고 『정부의 지침에 의존해 영업해온 일본은행들의 과거를 밟지 않으려면 금리자유화 등 금융시장의 자유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토스회장은 『한국의 은행들은 현금흐름을 무시하고 부동산 담보를 기준으로 대출해왔다』며 『현재와 같이 기업들이 자금난에 쫓겨 너도나도 자산매각에 나서면 은행들은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래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