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판결/借名전환 무죄]『실명제 쓰러지는 소리』

  • 입력 1997년 4월 17일 20시 46분


盧泰愚(노태우)전대통령의 비자금을 자신의 명의로 변칙 실명전환해준 혐의(업무방해죄)로 기소됐던 鄭泰守(정태수)한보그룹 총회장과 李景勳(이경훈)전㈜대우대표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 확정판결은 금융실명거래에 관한 긴급명령을 크게 훼손시키는 판례다. 즉 합의차명을 이용한 돈세탁이 대법원에 의해 공식 합법화한 것. 이에 따라 지난 93년 실시된 금융실명제는 사실상 무력화한 셈이다. 현행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명령에는 「금융거래자는 그 명의를 실명으로 전환해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명제 실시이후 작년말까지 실명전환율이 98%에 달했지만 상당부분이 차명에 의한 변칙실명전환인 것으로 알려져 실명제 실시취지를 무색하게 해왔다. 재정경제원 실명제실시단 관계자들도 『이름을 빌려줘 합의차명을 해준 사람에 대한 처벌근거가 없어 고심했는데 업무방해혐의마저 무죄로 판결함에 따라 차명인을 처벌할 길이 전혀 없게 됐다』며 난감해했다. 이와 관련, 재경원은 『구멍이 뚫린 실명제를 보완하기 위한 대체입법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아무튼 당장은 금융창구 직원들이 이번 판결로 실명확인에 더욱 애를 먹을 것으로 보인다. 상업은행의 A지점장은 『돈을 예치하는 사람의 명의가 실명인지 여부를 확인하느라 곤란을 겪어온 상황에서 차명인 무죄판결이 확정됨에 따라 변칙실명전환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은행감독원 관계자는 『기업들을 상대로 수천억원대의 자금을 싼 이자로 빌려 쓰라고 권유했던 괴자금이 깔려있는 상황에서 명의대여자에 대한 처벌이 무산됐기 때문에 거액의 괴자금이 합법적으로 기업으로 흘러들어갈 소지가 커졌다』고 지적했다. 조흥은행의 K상무는 『그동안 실명거래를 위반한 금융기관 임직원들만 처벌대상으로 규정, 금융실명제가 정착되는데 많은 무리가 따른게 사실』이라면서 『게다가 이번에 차명인 무죄확정판결까지 나와 실명제의 구멍이 더욱 크게 뚫렸다』고 말했다. 금융계 관계자들은 돈세탁방지법 등을 제정, 검은돈이 금융기관을 자유롭게 드나들지 못하도록 막아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강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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