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서 본 실명제 허점]합의차명땐 적발 원천적 不可

  • 입력 1997년 3월 6일 19시 55분


[천광암 기자] 『차명거래에 필요한 이름을 빌리기 위해 한때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파고다공원이 브로커들에게 인기를 끈 적이 있습니다. 또 창구에서는 수십억원짜리 예금계좌가 여러개로 쪼개져 각기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입금되는 명백한 차명거래를 어렵잖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막을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음성적인 자금의 흐름을 차단한다는 금융실명제의 명분은 「합의차명」의 허점 때문에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보그룹 鄭泰守(정태수)총회장의 경우 이같은 차명거래를 이용해 盧泰愚(노태우)씨의 비자금을 실명전환해줬고 자신도 차명거래를 이용해 거액의 비자금을 관리해온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또 지난해 11월에는 카드회사들이 이미 사망한 사람의 명의로 신용카드를 발급해줬다 재경원에 적발되는 등 실명제가 차명거래로 인해 유명무실화된 사례는 적지 않다. 명동사채시장주변에는 차명에 필요한 이름을 빌려주는 브로커들까지 음성적으로 활개를 치고 있다. A은행 명동지점의 한 실무자는 『차명계좌를 개설해놓고 대리인을 통해 거래를 할 경우 실제 돈 임자는 은행에 가지 않더라도 모든 거래를 정상적으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지난 93년 실명제가 처음 실시될 당시 된서리를 맞을 것이라던 명동사채시장은 오히려 더 커졌다. 사채시장의 한 관계자는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사람들, 특히 유명기업체의 오너들중에도 전주(錢主)가 있다』고 털어놨다. 금융실명제의 완결판이라고 할 수있는 금융소득 종합과세에도 허점이 많다. 지난해말 주식시장에서는 큰 손들의 주식투자자금이 배당을 받지 않기 위해 대규모로 빠져나가는 일이 벌어졌다. 이 때 빠져나간 자금은 배당이 끝난 뒤 다시 주식시장으로 유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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