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의 논란끝에 경부고속철도 경주(慶州) 노선이 변경되었다. 경주시내를 통과하게 되어 있던 당초 노선 대신 외곽을 통과하는 화천리 노선이 새로 확정되었다. 문화재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는 선택으로 평가되지만 그간의 시간낭비와 이로 인한 엄청난 추가 공사비가 아깝다. 공기(工期)지연과 노선유치를 둘러싼 지역갈등 등 잡음과 손실은 근본적으로 당초의 졸속 노선설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경부고속철도 노선은 경주 이전에 대구와 대전에서도 당초 설계가 크게 바뀜으로써 역시 공기와 건설비에 큰 차질을 주었다. 대구와 대전의 시내통과 노선이 지상에서 지하로 바뀐 것은 문화재보호차원의 경주노선 변경과는 달리 지역이기주의가 원인이었다. 이처럼 잦은 노선변경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이 안전과 경제성 등 정작 중요한 문제들을 소홀히 넘긴 것이 매우 걱정스럽다.
경부고속철도는 벌써부터 설계와 시공 등에 걸쳐 안전성에 문제가 많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우선 노선설계를 할 때 항공측량이나 현장실측이 없었다는 사실이 지적되고 있다. 그 때문에 토질과 지형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 큰 문제라고 한다. 전체 구간중 70%가 교량과 터널로 이루어져 있는데 토질조사도 없이 노선설계가 되었다면 고속차량이 통과할 때 교량의 안전성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교량설계가 기술적 약점을 지니고 있으며 시공 또한 허술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프랑스 TGV사는 차량이 급정거할 때 교각부위가 밀릴 우려가 있다고 진단, 건설중인 교각의 보강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시공과정에서도 함량미달 자재를 쓰거나 설계가 바뀌어도 옛 도면 그대로 시공하는 경우마저 있다고 한다. 안전이 고속철도의 생명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공기내 건설이나 투자비 절감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안전을 전제로 했을 때의 이야기다. 교량과 터널 등이 안전하지 않게 건설된다면 공기를 맞춘들 자랑일 게 없고 투자비를 아무리 절감한들 그 모두가 헛돈만 들인 결과가 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올 하반기에 미국의 안전진단회사가 경부고속철도의 안전진단을 시작했고 곧 최종보고서를 내리라 한다. 보고서가 나오면 무더기 재시공이 불가피하고 그에 따라 공기가 더 늦어질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그간의 잦은 민원과 용지매입차질 노선변경 등으로 2∼3년의 공기지연과 건설비증액이 불가피해진 마당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 지역이기주의에 따른 노선변경 등 중요하지 않은 일로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된다. 이제부터라도 오직 안전 하나에 매달려 완벽한 고속철도를 건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