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떠나보낸 뒤 거칠어진 붓질…“세상의 얼굴 달라졌다”

  • 동아일보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3〉존 컨스터블의 ‘어런들 방앗간과 성’
메마른 나뭇가지-변덕스러운 구름
마지막 작품 암시하듯 복잡한 감정

존 컨스터블의 ‘어런들 방앗간과 성’(1837년).ⓒToledo Museum of Art
존 컨스터블의 ‘어런들 방앗간과 성’(1837년).
ⓒToledo Museum of Art
메마른 나뭇가지에 회녹색 이파리가 내키지 않는 듯 매달려 있다. 그 위로 느지막한 오후의 빛이 기울고, 변덕스러운 구름은 이내 비바람을 몰고 올 모양이다. 누렇게 빛바랜 어느 날의 오래된 기억 같다.

근대 영국을 대표하는 풍경화가 존 컨스터블(1776∼1837)의 유작 ‘어런들 방앗간과 성’은 작가의 마지막 작품임을 암시하듯 복잡미묘한 감정이 배어 있다. 빠른 붓 터치와 묵직한 물감이 번갈아 등장하고, 화면 곳곳은 팔레트 나이프로 다듬어 거칠면서 필사적이다.

서울 영등포구 더현대 서울 ALT.1 미술관에서 열리는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톨레도 미술관 명작전’에 전시되고 있는 ‘어런들 방앗간과 성’은 컨스터블이 그리던 도중 숨을 거둔 작품. 봄바람이 살랑이는 1837년 3월의 마지막 날, 그의 나이 예순하나였다.

물감이 채 마르기 전이었지만, 친구였던 화가 찰스 로버트 레슬리는 충분히 완성됐다고 판단해 그해 왕립 미술 아카데미 전시회에 출품해 그림을 세상에 알렸다. 털리도(톨레도) 미술관 측은 “컨스터블의 말년 회화가 도달한 깊이와 성찰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며 “자연의 실제 풍경과 변화무쌍한 빛의 변화, 삶의 감정이 충실하게 담겼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의 인생 후반부는 황금기와 암흑기의 교차로였다. 풍경화가로서 경력이 무르익어 세간의 인정을 받았고, 불혹에 오랜 친구였던 마리아 엘리자베스 비크넬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컨스터블은 사랑하는 아내를 1828년 먼저 떠나보내며 극심한 비탄에 빠진다. 그는 당시 동생 에이브럼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제 난 예전처럼 느끼지 못할 것이다. 내게 세상의 얼굴은 완전히 달라졌다”고 고백했다.

이후 화창한 하늘과 뭉게구름 아래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들이 담긴 ‘위븐호 공원’(1816년) 같은 그림은 거의 그리지 않았다. 마리아가 세상을 떠난 직후 완성된 ‘해들리 성’(1829년) 속 풍경은 금방이라도 폭풍우가 몰아칠 것만 같다. 폐허나 다름없는 성과 건조한 덤불은 음울한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곧이어 컨스터블은 왕립 미술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됐고, 1830년대엔 교단에 서며 화가로서 영예를 누렸다. 하지만 성공이 그의 절망과 슬픔을 완전히 덜어주지 못한 듯하다. 레슬리는 컨스터블에 관한 회고록에서 “그는 남은 생애 대개 검은 옷을 입었고, 겉모습에서 고통이 깊은 사람이라는 인상이 풍겼다”고 썼다. 컨스터블은 비바람 눅눅한 그리움이 밴 ‘어런들 방앗간과 성’을 남긴 뒤, 먼저 간 아내 곁에 나란히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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