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2〉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佛 신고전주의 회화’ 다비드 대표작
국가-가족 사이 비극적 이야기 담겨
자크루이 다비드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1786년).
ⓒToledo Museum of Art
고대 로마의 용맹한 전사, 호라티우스 삼형제가 검을 들어올렸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겠다는 맹세. 적국 ‘알바 롱가’와의 정면 승부에서 두 형제는 죽음을 피하지 못했고, 호라티우스만 살아남아 승전보를 울렸다. 그러나 호라티우스는 적군과 약혼한 누이를 처단해 심판대에 오르게 된다. 가족의 생명마저 앗은 그는 영웅인가 죄인인가.
이러한 설화를 묘사한 18세기 회화이자 유럽 미술사를 통틀어 가장 널리 알려진 이미지 중 하나인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가 한국을 찾았다.
서울 영등포구 더현대 서울 ALT.1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톨레도 미술관 명작전’에서 전시 중인 이 작품은 프랑스 신고전주의 회화를 확립한 자크루이 다비드(1748∼1825)의 대표작. 드라마틱한 이야기와 고전적인 구성, 곱씹을 만한 이야기로 인해 수없이 분석되고 재해석돼 왔다.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는 역사적으로 미술이 “지성과 도덕을 표현하는 매개”로 도약하게 만든 계기로 평가받는다. 톨레도 미술관의 로버트 신들러 큐레이터는 “공적 책무와 개인적 감정 사이에서 고민하는 인간의 내면이 완성도 높게 표현된 명작”이라며 “시대를 초월해 오늘날 일상과도 맞닿아 있다는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현재 전시되고 있는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는 미국 오하이오주 털리도(톨레도) 미술관이 소장 중인 판본이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한 1784년 작(가로 4.2m, 세로 3.3m)보다 작은 가로 1.6m, 세로 1.3m 크기다. 축소본이지만 엄격한 삼각형 구도와 절제된 색채, 극적인 감정 대비 등은 마찬가지로 잘 드러나 신고전주의 회화의 정수를 엿볼 수 있다.
이 축소본은 왜 만들어진 걸까. 정본(正本)으로 여겨지는 루브르 소장품은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의 의뢰로 앞서 제작됐다. 재정 위기에 봉착한 18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국가 권위가 실추됐고, 국왕은 ‘국가가 개인에 앞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다비드에게 도덕적 회화를 주문했다. 그렇게 완성된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에 크게 감격한 이가 있었는데, 귀족이자 예술 후원자였던 보드뢰유 백작(1740∼1817)이었다.
보드뢰유 백작은 다비드에게 같은 그림을 작게 그려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백작은 그림을 품에 안은 이듬해인 1787년, 도박 빚에 허덕이다가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를 팔아야 했다. 결국 작품은 여러 소장가를 거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톨레도 미술관에 오게 됐다.
백작의 작품을 손에 넣었던 역대 수집가 중엔 장바티스트 피에르 르브룅(1748∼1813)이란 인물도 있다. 화가이자 미술상이었던 르브룅은 루브르 박물관의 핵심인 왕실 소장품을 확충한 주역이다. 당대 유럽에서 가장 성공한 여성 초상화가였던 엘리자베트 루이 비제 르브룅과 결혼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 르브룅 부인이 남긴 명작도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호라티우스 작품의 맹세’ 바로 오른쪽에 걸려 있는 ‘세레스 백작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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