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의 ‘넥스트 제너레이션’은 누구일까? 2020년 본보가 실시했던 영화계 설문조사에서 ‘포스트 봉준호’로 지목된 이는 변성현 감독(46)이었다. 서른두 살의 나이에 ‘나의 PS 파트너’(2012년)로 데뷔해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년)으로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던 그였다.
3일 서울 중구 CJ제일제당센터에서 인터뷰하는 변성현 감독.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3일 서울 중구에서 만난 변 감독은 “그 기사가 나가고 놀림을 많이 받았다”며 “한 달 정도 제 별명이 ‘포봉’(포스트 봉준호의 줄임말)이었다”고 억울(?)해했다. 하지만 3040 감독 중 기대주를 꼽으라면 여전히 그는 먼저 거론되는 인물이다. 2020년 후에도 ‘킹메이커’(2022년), ‘길복순’(2023년), ‘굿뉴스’(2025년) 등 꾸준히 화제작을 내놓으며 존재감을 이어가고 있어서다.
사실 변 감독은 “먹고 살기 위해서” 영화계에 진입했다. 스무 살 중반에야 영화감독에 대한 생각을 품었고, 2010년 독립영화 ‘청춘 그루브’를 찍고 난 후 우연히 CJ 문화재단의 신인 영화 창작자 지원 프로그램 ‘프로젝트 S’(현 ‘스토리업’)를 접했다. 당시 그에게 상금은 “굉장히 큰 유혹”이었고, 하루이틀 만에 써낸 작품이 덜컥 당선됐다. ‘나의 PS 파트너’였다.
영화 ‘나의 PS 파트너’ 스틸컷. CJ ENM 제공 ㅡ당시 소감이 궁금하다. “당선돼 상금을 받은 것만으로도 기분이 굉장히 좋았던 상태였어요. 그런데 CJ ENM에서 ‘영화화하고 싶다’는 연락까지 왔어요. 집에 누워있다가 데뷔하게 된 셈이죠. 그쪽에서 제 독립영화를 보셨는지 연출까지도 제안을 주셨는데…. 사실 연출은 안 하고 싶었어요. 로맨틱코미디를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ㅡ첫 상업영화다 보니 좌충우돌도 있었을 것 같은데. “분명 있었죠. 배우와 커뮤니케이션하는 게 가장 서툴렀던 것 같아요. 단편영화는 제 동네친구들이 주연이었는데, 상업영화는 직업배우가 오잖아요. 그들과 솔직하게 소통하는 것에 겁을 먹었던 것 같아요. ‘나와 의견이 안 맞으면 어쩌지?’ ‘신인감독이란 이유로 배우에게 설득당하는 것 아닐까?’하는 걱정이 컸죠.”
3일 서울 중구 CJ제일제당센터에서 인터뷰하는 변성현 감독.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하지만 이때의 경험은 변 감독의 궤적을 바꿨다. ‘나의 PS 파트너’는 제작비 약 30억 원 규모의 비교적 작은 상업영화였지만, 그는 정교한 제작·배급 시스템에 적잖이 놀랐다고 한다. 또 당시엔 연출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평소 즐겨보지도 않던 로맨틱코미디를 찍고 나니 오히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를 연출해보고 싶다는 갈증이 커졌다”고 했다.
이후의 행보는 알다시피다. 언더커버물부터 정치물, 액션 느와르, 블랙코미디까지 비교적 짧은 기간에 다양한 장르를 오갔다. 특히 변 감독은 상업성과 예술성의 경계에 서있는 독특한 미감을 자랑한다. 이런 장르적 감각은 “예술영화보단 상업영화를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또 너무 뻔한 상업영화는 싫어한다”는 변 감독의 취향과도 맞닿아 있었다.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스틸컷. CJ ENM 제공 ㅡ스펙트럼이 넓다 보니 차기작이 기대되면서도 동시에 종잡을 수 없다는 느낌도 받는다. 의도된 행보인가. “물론 본능적인 부분도 있지만, 뻔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제 한계를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다음 작품을 준비할 때 제 안에서 장르적 변주를 해보거나, 비틀어서 생각하려고 해요.”
ㅡ스스로 생각하는 한계가 무엇인가. “훌륭한 감독님들 인터뷰를 보면 아주 어릴 적부터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고들 하시잖아요. 저는 아니었어요. 다른 사람을 통해 저에게 재능이 있다는 걸 들었고, 그럼 직업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던 쪽이죠. 극장에 자주 가던 사람도 아니었고요. 그래서 훌륭한 감독님들처럼 영화에 대한 집요함이랄까요? 그런 게 없었다고 생각해요. 태생적인 한계죠. 그런데 하다보니 영화가 정말 좋아지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꿈이 영화감독이었다면 더 나은 감독이 됐을 텐데’ 생각해요.”
영화 ‘킹메이커’ 스틸컷. 플러스엠 제공 상업영화 감독으로 데뷔한 지 14년. ‘사람 구실’을 하려고 영화판에 뛰어들었던 그는 “너무 뒤늦게 영화를 좋아하게 돼 안타까운 마음까지 든다”고 말할 만큼 달라졌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호칭은 변하질 않았다. 변 감독은 “14년 전에도 지금도 저는 ‘차세대 감독’으로 소개된다”며 “저는 대체 언제쯤 ‘현재 세대 감독’이 될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세대교체가 더딘 영화 산업의 단면을 보여주는 말이다. 변 감독 스스로도 “제가 단편·독립영화 감독에게 상업 영화사가 기회를 주었던 마지막 세대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인들이 기회를 받을 창구가 필요하다”는 그의 말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변 감독은 ‘킹메이커’ 촬영 당시 연출부 막내였던 김선경 감독과 영화 ‘파문’을 공동 집필했다. 김 감독의 졸업 작품을 본 뒤 글쓰기를 권했고, 초고를 함께 다듬으며 제작사 미팅도 주선했다고 한다.
그는 “쓰임을 당하는 입장이라면 최대한 오래 쓰이자고 생각하는 쪽”이라며 “제작엔 소질이 없으나 글 작업을 돕는 멘토 역할에는 굉장히 관심이 많다”고 했다. 배우 이솜, 변요한이 출연하는 영화 ‘파문’은 3~4월 촬영에 돌입할 예정이다.
영화 ‘굿뉴스’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ㅡ변성현 감독의 차기작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지금 떠오르는 게 없어서 생각하는 중이에요. 사실 제가 ‘킹메이커’ 이후로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다고 해야 할까요? 제가 이야기를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이야기가 갑자기 찾아오는 것 같아요.”
ㅡ‘굿뉴스’ 이후 멜로를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도 하셨는데. “바로 다음 작품을 멜로로 하겠다는 말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언젠가는 하고 싶어요. 제 작품에 조금씩 멜로가 섞여 있었지만 정통 멜로를 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제가 만드는 멜로를 좋아하실지 모르겠네요. 분명 아련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닐 것 같아서….”
ㅡ네 작품을 연이어 함께한 설경구 배우님과는 이제 정말 안녕인가. “사실 ‘굿뉴스’는 경구 선배님이랑 안 하려고 했어요. ‘길복순’ 찍을 때 이미 선배님께 ‘이제 그만 각자의 길을 가자’고 말씀드렸기도 했고요. 그런데 어떤 기사를 읽었는데, 그게 저를 건드린 거예요. ‘이 조합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내용이었어요. 그래서 한 번 더 하고 헤어지자고 했죠. (웃음) 이렇게 말하지만 시나리오 쓰다 보면 또 달라질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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