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과학으로 본 ‘감정이란 무엇인가’

  • 동아일보

◇감정의 기원/칼 다이서로스 지음·최가영 옮김/384쪽·2만1000원·북라이프


“제가 왜 못 우는지 모르겠어요.”

병원 신경정신과 진료실에 온 청년 마테오의 말이다. 8주 전, 임신 중인 아내가 마테오의 곁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 고속도로에서 불쑥 밴이 나타났는데, 브레이크를 제대로 밟지 못했던 것. 젊은 의사이던 저자는 그의 사연을 들으며 눈물을 펑펑 흘렸다. 감정적인 울음은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척인 유인원에게서도 찾기 어려운 현상. 광유전학(Optogenetics·빛으로 생체조직의 세포를 제어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마테오가 울지 못했던 건 뇌 깊숙한 곳 다리뇌(橋腦·교뇌) 안의 신경섬유가 제 기능을 못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감정이 어떻게 신경회로에서 생성되고 어떤 경로를 거쳐 성격과 행동으로 이어지는지를 조명한 책이다. 세계적 신경과학자로 꼽히는 저자는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정신의학과 교수로 광유전학을 창시한 인물. 남들이 자기 머리를 해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을 비롯해 조증, 섭식장애 등 다양한 마음의 병을 앓는 이들의 사례를 살피며 마음에 대한 이해로 나아간다.

“경계성 성격장애 환자들에게는 사는 동안 마주치는 여러 상황과 다양한 인간 상호작용 수준의 상대적 가치가 간단하게 비교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적당한 중간 없이 허무맹랑한 걱정에 빠지거나 자연스러운 주고받음의 인간관계에 극단적인 반응을 보인다. 마치 일종의 가치 환산 시스템이 발달하다 만 것 같다.”(제4장 ‘상처가 건네는 이야기’에서)

저자는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은 자살 의도가 없는 자해 행동에서 심리적 보상을 얻는 경향이 있고, 그 배경엔 훨씬 더 깊고 큰 내면의 상처를 가리려는 목적이 있다고 했다. 이 성격장애는 모두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설명되는 건 아니지만, 어린 시절의 스트레스와 무력감이 뇌 심부의 ‘고삐(Habenula)’라는 구조에 이상을 일으켰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과학자의 책인데도, 문체가 문학적인 느낌을 준다. 비유적 표현 등을 해석하는 게 까다롭긴 하지만 읽는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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