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메르만, 서울-부산-대구서 공연
조성 다른 24곡 선별해 무대 달궈… 당일 감각 맞춰 현장서 곡목 결정
러-우크라 작곡가 곡 연이어 연주… “한국 피아니스트들 재능 놀라워”
이달 ‘프렐류드’를 주제로 내한 리사이틀을 여는 폴란드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은 “내 직업의 99%는 ‘장인정신’에 관한 일”이라며 “콘서트홀에서 벌어지는 일은 언제나 예측할 수 없다”고 했다. 마스트미디어 제공 ⓒBartek Barczyk
“결국 사람들은 ‘아름다움(beauty)’을 경험하고 싶은 게 아닐까요.”
폴란드가 낳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거장’ 크리스티안 지메르만(70)의 입에선 ‘아름다움’이란 단어가 반복해서 나왔다. 9일 서울 송파구의 한 호텔에서 동아일보와 만난 그는 “느린지, 드라마틱한지, 감동적인지와 관계없이 청중은 결국 마음을 울리는 곡을 듣고 싶어 한다”고 강조했다. 1975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18세 최연소로 우승한 뒤 국제적 명성을 얻은 지메르만은 이달 서울과 부산, 대구 등에서 모두 여섯 차례 공연을 가진다.
● “모두 다른 조성 가진 24곡 연주”
지메르만은 앞서 11일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에서 첫 번째 공연을 펼친 데 이어 서울 롯데콘서트홀(13·15·18일)과 부산콘서트홀(20일),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22일)에서 리사이틀을 이어 간다.
이번 공연은 전주곡을 뜻하는 ‘프렐류드(Prelude)’를 주제로 다소 독특하게 구성된다. 지메르만은 “그동안의 프로그램은 베토벤 후기 소나타 세 곡처럼 특정 작곡가나 유명한 작품들로 구성된 경우가 많았다”며 “그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아름다운 소품들을 무대에 올리기가 늘 어려웠다”고 했다.
그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에서 이런 아쉬움을 해결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바흐가 1722년 발표한 이 작품은 서로 다른 24개의 조성을 가진 곡들을 하나의 사이클로 엮은 곡집. 이번 무대에서 지메르만은 바로크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18명의 작곡가 작품 가운데, 서로 다른 24개 조성의 프렐류드를 선별해 연주한다.
때문에 이번 리사이틀은 공연 전까지 연주 곡목을 공개하지 않는다. 주최 측은 “짧게는 40초, 길게는 10분에 이르는 곡들을 공연마다 다른 구성으로 선보인다”고 예고했다. 이런 ‘깜짝 공연’을 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뭘 연주할지 나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저는 연주회를 그저 치르는 사람이 아니라 음악을 연구하고 탐구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곡을 연주해야 할지 계속 궁리하고 있어요. 오늘 좋아하는 곡과 다음 달 좋아하는 곡이 달라질 수 있듯, 우리의 감각과 생각은 늘 바뀌니까요.”
● “한국 피아니스트들 놀라워”
‘완벽주의자’로 알려진 지메르만은 공연마다 자신의 피아노 주요 부품을 손수 챙겨 다니는 걸로도 유명하다. 연주 도중 촬영이나 소음에도 매우 엄격한 편이다. 지메르만은 “나는 장인이자 까다로운 연주자”라며 “그렇다고 완벽주의자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관객과의 만남을 개인적이고 친밀한 시간으로 여기기 때문에, 객석에서 녹음을 하거나 사진을 촬영하면 깊은 배신감을 느낍니다. 음악은 그런 걸로 이해할 수 있는 예술이 아니잖아요.”
지메르만은 한국과 인연이 깊다. 2003년 첫 내한 이후 2018년 한국을 다시 찾았고, 이후 여러 차례 내한 공연을 이어 왔다. 그는 손으로 급성장하는 모양의 그래프를 그리며 “지난 20년 동안 한국의 클래식 음악 수준이 눈에 띄게 성장했다”며 “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세계 주요 콩쿠르에서 수없이 수상하며 놀라운 재능을 보여 주고 있다”고 했다.
지메르만에게 “지금 시대에도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고, 또 사람들이 들어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그의 입에선 다시 한 번 ‘아름다움’이 등장했다.
“우리의 삶을 아름다운 것으로 채우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이미 세상에는 피와 살인이 낭자한 영화도 너무 많고, 폭력도 넘쳐나니까요. 아직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이번 프로그램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출신 작곡가들의 곡이 나란히 있기도 합니다. 한두 번 정도 연주하게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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