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리연장…’ 펴낸 김세건 강원대 교수
“한반도 대부분 원래 밭농사가 우선
소겨리는 소와 사람 사이의 품 교환
쌀생산 강조되며 관심 밖에 놓여”
김세건 강원대 교수는 “쟁기에 관한 종합적 연구는 우리의 터전과 존재, 관계양식에 대한 재발견이자 ‘겨리농경문화권’을 복원하는 일”이라고 했다.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한반도 중북부 산간지대에서 소는 일꾼이면서 친구이고, 그를 넘어 신(神)이 된 동물입니다. 그 중요성은 남쪽 평야의 벼농사 지역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최근 4000쪽이 넘는 대작 ‘겨리연장, 강원도를 담고 세우다’ 1∼4권(지식산업사)을 출간한 김세건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61)는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나 이렇게 강조했다. 과거 강원도에선 특히 영동지역을 중심으로 마구간(외양간)에 소를 위한 신을 따로 모셨다고 한다. 지역에 따라 ‘군웅(君翁)’ ‘쇠구영신(牛口靈神)’ 등으로 불린 이 신을 모신 집을 김 교수는 2006년 조사에서도 확인했다.
현대 들어 전통 농경문화 연구는 주로 벼농사에 초점을 뒀다. 하지만 한반도는 7할이 산지이고, 벼농사를 짓지 못하는 땅이 절반을 넘는다. 김 교수는 “강원도뿐만 아니라 함경도와 평안북도를 비롯해 한반도 대부분은 원래 밭농사가 우선”이라며 “하지만 일제강점기 쌀 생산이 강조되고, 이후 분단까지 되면서 어떻게 밭작물을 생산하고 농경문화를 발전시켰는지는 관심 밖에 놓이게 됐다”고 했다.
홍천 겨리농경문화 보존회 제공김 교수가 농경생활문화의 전모를 탐사하기 위해 꺼내든 열쇠는 ‘겨리연장’이다. 겨리연장이란 비탈이 많은 한반도 중북부에서 쓰는 쟁기. 남쪽의 ‘호리쟁기’와는 달리 소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가 함께 끈다. 그래서 소가 있는 두 집이 ‘짝’을 맞춰야 하고, 소가 없는 집까지 더해 함께 일하는 ‘소겨리’를 꾸린다. 벼농사 지역에선 두레를 통해 모내기와 김매기만 마치면 큰일을 마친 것이나 진배없다. 하지만 밭농사 지역에선 농사도, 소겨리도 1년 내내 이어진다. 그래서 “설 이전에 ‘소짝’을 맞추지 못하면 아무 일도 못 한다” “소짝은 사람짝”이란 말이 있을 정도다.
“두레가 ‘사람 품앗이’라면 소겨리는 ‘소와 사람 사이의 품 교환’이 이뤄지는 소 중심의 공동 노동조직입니다. 식사와 일상까지 함께하는, 한반도 중북부 공동체 문화의 기틀인 거죠. 농촌 연구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저조차, 2001년 강원대에 부임할 때까진 소 두 마리가 끄는 쟁기가 있는지도 몰랐어요. 학계가 그동안 우리 농업의 원류인 밭농사에 대한 고민을 잃어버렸던 겁니다.”
쟁기질을 하는 ‘밭갈애비’에겐 소가 친구이기도 했다. 그래서 소 모는 소리엔 “내 팔자나 니 팔자나 아니하고는 못살 소가 되었네” 같은 신세타령이 담겼다. 김 교수는 “한반도 중북부에선 소와 사람의 관계가 남쪽보다 훨씬 밀접했다”며 “소를 (사람에 빗대) ‘생구(生口)’라고 불렀고, 주택 역시 부엌에서 일을 하면 붙어 있는 마구간에서 소가 쳐다보는 구조였다”고 했다.
김 교수는 쟁기가 중국에서 전래되지 않고, 한반도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한반도에도 쟁기의 원형이 되는 삽과 비슷한 모양의 ‘따비’가 존재했으며, 땅에 돌이 많은 탓에 중국 화북지역의 ‘눕쟁기’와 다른 ‘선쟁기’가 발전했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한반도에선 독자적 농경사회의 기술체계가 발전했다”며 “한반도 농민은 창의성을 발휘하지 않은 채 농기구는 무조건 중국에서 전래됐을 것이라고 보는 건 이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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