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수 교양지 ‘샘터’ 잠시 쉼표… “단행본 만들며 힘 키워 돌아올 것”

  • 동아일보

김성구 ‘샘터’ 대표의 아쉬움과 희망
한강-법정 스님 등 작가의 산실
적자 등 경영부담 커지며 ‘스톱’
이해인-김형석-정호승 에세이 실린 내년 1월호 끝으로 무기한 휴간

김성구 샘터 대표는 “법정 스님과 이해인 수녀, 장영희·피천득·최인호 선생 등 샘터를 거쳐간 이들은 모두 평범한 삶과 소소한 일상을 얘기했다”며 “위대한 영웅담보다 훨씬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이자, AI(인공지능)가 쉽게 범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했다. 샘터사 제공
김성구 샘터 대표는 “법정 스님과 이해인 수녀, 장영희·피천득·최인호 선생 등 샘터를 거쳐간 이들은 모두 평범한 삶과 소소한 일상을 얘기했다”며 “위대한 영웅담보다 훨씬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이자, AI(인공지능)가 쉽게 범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했다. 샘터사 제공
《“잡지 휴간을 발표한 뒤 전화를 100통은 받은 것 같아요. 문자까지 합치면 셀 수 없죠.” 씁쓸하면서도 묵직한 미소란 이런 걸까. 22일 전화 인터뷰에 응한 김성구 ‘샘터’ 대표(65)의 표정이 도통 가늠이 되질 않았다. 1970년 4월 창간해 국내에서 가장 사랑받는 월간 교양지였던 샘터. 56년 동안 발행되며 국내 최장수 타이틀을 지켰던 샘터가 내년 1월호를 끝으로 ‘무기한 휴간’에 들어간다.》

샘터사를 창립한 고(故) 김재순 전 국회의장의 아들인 김 대표는 가슴에 담아둔 게 참 많은 목소리였다.

● 피천득부터 한강까지 ‘문인들의 산실’

24일 출간된 휴간호는 그 무게감을 다시 한 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105)와 이해인 수녀(80), 정호승 시인(75)의 에세이가 실렸다.

1970년 샘터 창간호
1970년 샘터 창간호
세 필자는 모두 ‘샘터’와 오랜 인연을 맺어 왔다. 특히 김 교수는 1970년 창간호에도 글을 실었다. 56년이란 시간을 뛰어넘어 시작과 마지막을 함께하는 셈이다. 정 시인의 글도 의미심장하다. 제목은 ‘시간은 젊을 때 아껴야 한다’. 창간호 주제였던 ‘젊음을 아끼자’와 수미쌍관을 이뤘다. 창간 때부터 샘터를 구독한 애독자 오두환 씨의 인터뷰도 눈길을 끈다.

김 대표가 말하는, 반 세기 넘게 이어온 ‘샘터’의 정체성은 분명하다.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 그는 이를 “3 대 3 대 3의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전문 작가의 글 30%와 생활인이 직접 쓴 글 30%,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이를 찾아가 기록한 글 30%. 김 대표는 “70세가 넘어 야학에서 글을 배운 할머니가 떠오른다”며 “몽당연필로 원고지에 글을 쓰셨는데, 맞춤법은 많이 틀렸어도 한 줄도 버릴 수 없는 원고였다”고 회상했다.

“그런 분들이야말로 비범한 존재가 아닐까요. 그런 필자와 독자들이 ‘샘터’를 만들어 온 겁니다.”

샘터는 자주 ‘작가의 산실’로도 불렸다. 정 시인과 정채봉 아동문학가가 샘터에서 일했다. 피천득과 최인호, 정채봉, 법정 스님, 장영희 교수 등이 샘터 지면을 거쳐 갔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한강도 1990년대 중반 샘터 기자였다. 김 대표는 “한 작가의 ‘관찰력’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고 했다.

“계단의 높이, 집 앞에 놓인 아이 신발, 그 배열까지 유심히 보면서 그 집의 삶을 읽어내는 식이었어요. 그런 디테일한 관찰력이 훗날 소설의 토대가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 “힘을 기른 뒤 돌아오겠다”

무기한 휴간에 들어가는 이유는 자명하다. 경영 악화. 김 대표는 “월간지를 유지하려면 최소 5만 부는 나가야 적자를 면한다”며 “최근 샘터의 발행 부수는 약 2만 부 수준”이라고 했다.

샘터는 2019년에도 휴간을 결정한 적이 있다. 당시 고(故) 장영희 교수 가족 등 수많은 독자들이 지원 의사를 밝혀 왔다. 이번에도 “후원하겠다”는 문의가 이어졌다고. 하지만 김 대표는 같은 길을 반복하지 않기로 했다.

“외부 지원에 기대 이어가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안 되겠다고 판단했어요. 단행본을 통해 스스로 힘을 기른 뒤, 다시 돌아오겠다는 선택이었죠.”

월간지는 휴간하지만 샘터 출판사는 계속된다. 잡지 기자들은 단행본 편집부로 자리를 옮겼다. 샘터동화상·생활수기상 등 독자 참여 프로그램도 유지한다. 새로운 필자 발굴 역시 멈추지 않는다.

“샘터는 물이 솟는 ‘샘’이자 사람들이 모여 쉬는 ‘터’였습니다. 지금 세상은 너무 많은 게 문제처럼 느껴지는 시대잖아요. 그럴수록 맑고,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것의 가치가 더 소중해지는 것 같아요. ‘진짜’를 찾아내 누구나 편안하게 마시는 단행본을 만들고 싶어요. 그게 지금 샘터의 각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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