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당신의 묘비에 어떤 문구가 새겨지길 원하는가

  • 동아일보

英 경제 석학 찰스 핸디 자서전… 죽음 앞두고 자신의 삶 되돌아봐
90여 년간 다정하기 위해 노력… 사랑 주고받으며 자신답게 살길
◇아흔에 바라본 삶/찰스 핸디 지음·정미화 옮김/284쪽·1만9800원·인플루엔셜

저자는 어제의 경험이 내일의 해답이 될 수 없고,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이분법의 함정에서 벗어나라고 조언한다. 또 성공이란 물질적 성취가 아니라 사랑을 주고받으며 자신답게 살아가는 것이며 그 중심에는 언제나 가족, 친구, 좋은 음식처럼 삶을 지탱하는 본질적인 기쁨이 놓여야 한다고 말한다. ⓒElizabeth Handy
저자는 어제의 경험이 내일의 해답이 될 수 없고,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이분법의 함정에서 벗어나라고 조언한다. 또 성공이란 물질적 성취가 아니라 사랑을 주고받으며 자신답게 살아가는 것이며 그 중심에는 언제나 가족, 친구, 좋은 음식처럼 삶을 지탱하는 본질적인 기쁨이 놓여야 한다고 말한다. ⓒElizabeth Handy

2021년 ‘100세 철학자’로 유명한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1920년생인 그는 당시 101세. 17세 때 도산 안창호의 설교를 듣고 뜻을 세우고, 시인 윤동주와는 어릴 적 친구였다. 대학에선 고 김수환 추기경과 동문수학했고, 교사 시절에는 고 정진석 추기경을 길러낸, 후회라고는 1도 없을 것 같은 우리 시대 큰 어른. 하지만 그는 “교수 때 등록금을 못 내는 학생들이 수두룩했는데, 스승이란 사람이 월급 오르고 보너스 나왔다고 좋아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부끄럽다”라며 “요즘도 일기를 쓰면서 매일매일 실수를 반성하고 있다”라고 했다.

이 책은 저명한 경영사상가이자 영국의 싱크탱크인 세인트조지하우스 소장과 왕립예술학회장을 지낸 저자(1932∼2024)가 병상에서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정리한 단상을 담았다.

“‘저기요. 지금 거짓말하시는 거 알고 있습니다. … 가끔 맞는 글자를 찍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제가 당신의 시력을 제대로 판단할 수 없어요.’ 나는 검안사의 말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때부터 정직하게 사실대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시력에 맞는 안경을 새로 맞췄고 다시 또렷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일일 뿐 아니라, 실제로 시야를 더 맑게 해주는 일이기도 했다.”(1장 ‘언제나 진실을 말해야 삶이 편해진다’에서)

세계적인 석학의 마지막 책이라면 뭔가 현학적이고 오묘한 인생의 진리를 알려줄 것 같지만, 그런 것은 없다. 시력 검사장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젊을 적 대머리를 감추려다 혼난 이야기 등을 통해 후회 없는 삶을 대하는 태도를 가볍게 풀어나간다. 읽는 내내 ‘내려올 때 이런 예쁜 꽃을 보게 될 거야. 근데 그 꽃, 사실 올라갈 때도 그 자리에 있었다. 네가 못 봤을 뿐’이라고 알려주는 듯하다.

후회 없는 삶을 위해 저자가 제안하는 방법은 꽤 괜찮은 것 같다. ‘사람들이 나를 어떤 형용사로 표현해 주기를 원하는가?’ ‘당신의 묘비에 어떤 문구가 새겨졌으면 하는가?’를 생각해 보라고 조언한다.

저자는 90여 년의 삶 속에서 자신이 더 친절하고 다정해지기 위해 노력해야 했고, 사람들은 저자가 더 믿음직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랐다고 술회한다. 이제 와서 몇 가지는 ‘응급 처치’처럼 조금 손볼 수는 있겠지만, 대부분은 이미 늦었을지 모르고 어떤 면에서는 인생의 일부를 낭비한 셈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간곡하게, 아직 삶이 많이 남아 있을 때, 사소한 잘못을 고칠 시간이 있을 때 자신이 했던 훈련을 시도해 보라고 권한다. 사람들이 오래 기억하는 것은 친절, 믿음, 정직, 공정 같은 흔히 드러나지 않는 미덕이다. 얼마나 현명한지, 무슨 상을 받고 얼마를 벌었는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 두껍지 않은데, 상당한 무게를 마음에 던진다. 부제는 ‘시대의 지성 찰스 핸디가 말하는 후회 없는 삶에 대하여’.

#찰스 핸디#자서전#인생 단상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